다리
문학전문출판사 미행에서 미국의 시인 하트 크레인(Hart Crane, 1899-1932)의 시집을 국내 처음 소개한다. 32세에 요절한 하트 크레인의 대표작 『다리(The Bridge)』(1930)가 주인공이다. 『다리』는 총 1,000행이 넘는 원대한 장시이자 서사시로 총 8장, 15편의 시로 구성된다. 이 시는 비슷한 시기 활동한 선배 시인이며 『다리』보다 8년 일찍 출판된 T. S.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The Waste Land)』와 곧잘 비교되는데, 엘리엇의 『황무지』가 세계대전의 공포와 인간 문명의 황폐함으로 염세주의적 시선을 보여주었다면, 하트 크레인의 『다리』는 ‘다리’라는 매개로 한 기술 문명의 집대성을 통해 미래 세계의 희망을 말한다. 둘은 이처럼 대비되지만 20세기 모더니즘 시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미국적 서사시의 표본인 하트 크레인의 『다리』는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한 희망적인 반격이며, 시인이 존경하고 흠모했던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 이후 가장 환상적이며 완성도 높은 장시이다.
“천상의 양식이여! 사랑 자신이 사랑의 놀라움을 건너편에서 격정적으로 응시하다 고요해진 눈들이여!” -「해터러스곶」에서
“가슴을 돌로 만드는 발명들- 스스로에게 이르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대 다리여, 오 사랑이여.” -「아틀란티스」에서
뉴욕 ‘브루클린 다리’와 하트 크레인의 『다리』
미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 하트 크레인.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연이은 자살 시도 등 비극적인 파멸을 갈망했던 그는 어릴 적부터 부모와의 갈등, 자신이 퀴어로서 고통과 위험이 뒤따랐던 동성애 생활을 이어가며 순탄치 않은 짧은 삶을 살았고 신비로운 시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다리(The Bridge)』를 통해 미국이 이룬 인간의 신화,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를 노래했다. 하트 크레인은 1930년 뉴욕 ‘브루클린 다리’를 염두에 두고 쓴 장시 『다리』를 발표한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고 회항하는 장면인 「아베마리아」로 시작해서 남북전쟁을 걸쳐 확장된 미국의 영토, 역사, 신화, 설화 그리고 기술과 과학의 위대한 발전을 찬양했다. 시인이 이 시를 쓴 1920년대에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라든가 베이 브리지, 뉴욕의 조지 워싱턴 브리지 같은 미국을 상징하는 다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거나 착수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따라서 시인에게 ‘브루클린 다리’는 미국의 정신과 기술의 승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었다. 브루클린 다리는 뉴욕 맨해튼 섬 남단에서 이스트강을 건너 브루클린에 이르는 다리다. 1883년 개통될 당시 전 세계가 주목한, 환상적이고 경이로운 구조물이었다. 세계 최초, 최장의 현수교인 이 다리는 그 총 중량이 15,000여 톤이고 강철 케이블의 무게만 3,000톤이 넘는 엄청난 교량이었다. 즉 이 다리의 완공은 미국의 신화로 충분했다. 브루클린 다리는 1869년 착공해 1883년 개통하기까지 13년 이상의 공사 기간을 거쳤다. 토목 기사이자 기업인인 존 오거스터스 로블링(John Augustus Roebling, 1806-1869)에 의해 입안됐고 뉴욕주는 브루클린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받아들여 그가 공사를 지휘하도록 했다. 하지만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로블링은 공사를 감독하다 상처를 입어 발가락을 절단하고 파상풍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만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다리의 건설 책임을 맡게 된 그의 아들 워싱턴은 다리 교각 건설 중 수중에 들어갔다가 잠수병에 걸려 몸져눕게 된다. 이 외에도 다리를 건설하던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등 숱한 사고가 잇따랐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유업을 받든 워싱턴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아내와 의사소통을 하며 다리 건설을 감독하였으며 이들은 어렵게 브루클린 프로젝트를 완수해낸다. 이렇듯 브루클린 다리는 단순한 다리를 넘어 인간 문명이 이뤄낸 미국의 신화이면서, 집념과 상상력이 빚어낸, 한 가족의 세대를 바친 근성의 구조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