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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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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25개 항목

봉준호
봉준호 Bong Joon-ho 장르영화의 문법을 활용해 계급·가족·권력·제도의 문제를 다뤄 온 대한민국의 영화감독·각본가·프로듀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재학 중 영화 동아리 ‘노란문’에서 활동했으며,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한 뒤 《백색인》과 졸업작품 《지리멸렬》 등의 단편을 연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인물.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영화 감독에 데뷔한 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수사기관과 시대의 폭력성을 그린 《살인의 추억》, 괴수영화 안에 가족극과 사회 풍자를 결합한 《괴물》, 아들의 결백을 밝히려는 어머니의 집착을 다룬 《마더》를 연출. 블랙코미디·범죄극·괴수영화·스릴러를 넘나드는 장르적 구성과 급격한 분위기 전환, 세밀하게 설계된 공간과 동선을 통해 개인을 압박하는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작품 세계를 구축.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국제 공동제작 영화 《설국열차》를 통해 영어권 배우들과 작업하며 제작 범위를 확대했으며, 넷플릭스 영화 《옥자》에서는 다국적 식품기업과 산업형 축산의 문제를 모험극과 풍자로 표현. 한국적 공간과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에서 출발해 자본주의·노동·환경·기술처럼 국가의 경계를 넘는 주제로 관심을 넓혀 온 감독. 《기생충》으로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수상을 이끈 인물.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으로 기록됨. 이후 인간을 반복해서 복제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SF 영화 《미키 17》을 연출했으며, 첫 장편 애니메이션 《앨리》로 활동 영역을 확장 중.
세종 (조선)
세종 (조선) 世宗 조선의 제4대 국왕(재위 1418~1450). 이름은 이도이며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18년 즉위함. 집현전을 중심으로 학술·편찬 사업을 확대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며, 공법·과학기술·예악·국방·통치제도를 정비해 조선 전기 국가 체제의 기틀을 확립한 군주.
정명석
정명석 Jung Myung-seok 기독교복음선교회를 창립하고 총재를 맡은 대한민국의 종교인. 여성 신도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로 2009년과 2025년 두 차례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됨.
장제원
장제원 Chang Je-won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보수 정치인. 부산 사상구에서 제18·20·21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에 참여하고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았다. 2023년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2025년 사망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멕시코의 영화감독·각본가·제작자. 《아모레스 페로스》로 국제 무대에 등장한 뒤 《21그램》·《바벨》의 교차 서사와 《버드맨》·《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형식적 실험을 통해 세계 영화계의 주요 감독으로 자리 잡음.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을, 《레버넌트》로 2년 연속 감독상을 받았으며 가상현실 설치 작품 《카르네 이 아레나》로 특별 오스카를 수상함.
글로리아 스타이넘
글로리아 스타이넘 Gloria Steinem 미국의 언론인·작가·정치활동가이자 여성운동 조직가. 1960년대 잡지 언론에서 활동을 시작해 1969년 여성들의 낙태 경험 공개 증언회를 취재한 뒤 여성해방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함. 전미여성정치회의와 페미니스트 잡지 《Ms.》 등의 공동 창립에 참여하며 미국 제2물결 페미니즘의 요구를 대중언론과 제도정치로 확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함. 성평등을 재생산권·인종차별·노동·미디어 재현의 문제와 연결했으며, 후기에는 국제 여성 연대와 한반도 평화운동까지 활동 범위를 넓힘.
황인용
황인용 Hwang In-yong 1940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방송인. 1966년 동양방송(TBC) 3기 공채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들어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오가며 활동했고,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심야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하며 대표적인 라디오 DJ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 잡음.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폐국하던 밤에는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TBC 방송을 진행하며 청취자들에게 고별 인사를 전함. 1980년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전향한 뒤 여러 방송사의 라디오·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MC와 DJ로 활동함. 장기간 방송 활동과 함께 클래식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1997년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 고전음악감상실 《카메라타》를 열어 자신이 수집한 빈티지 음향장비와 LP를 대중과 공유하기 시작함. 2004년에는 고향인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에 카메라타를 새로 개관해 음악감상실 운영을 본격적인 후반기 활동으로 이어감. 이후에도 방송 내레이션과 특별 DJ 활동 등을 병행하며 방송과 음악 공간 운영을 함께 이어감.
알프레드 비네
알프레드 비네 Alfred Binet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실험심리학 연구자. 1857년 니스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1891년 소르본의 심리학 연구소에 합류한 뒤 연구소를 이끌고 프랑스 최초의 과학 심리학 전문 학술지인 『심리학 연보(L’Année Psychologique)』 창간을 주도함. 기억·주의·추론·개인차와 아동 발달 등 고등 정신 기능을 관찰과 실험을 통해 연구함. 테오도르 시몽과 함께 학교에서 추가적인 교육 지원이 필요한 아동을 보다 객관적으로 판별하기 위한 지능 측정 방법을 개발함. 1905년 첫 검사 체계를 발표한 뒤 1908년 과제를 연령 수준별로 재구성하고, 1911년 다시 개정함. 이 비네-시몽 척도는 현대적인 실용 지능검사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1916년 루이스 터먼이 이를 미국 표본에 맞게 개정한 스탠퍼드-비네 지능검사로 계승됨. 비네는 검사 결과를 개인의 고정된 능력이나 타고난 서열로 간주하는 데 비판적이었음. 1909년 『아동에 관한 현대적 생각(Les Idées modernes sur les enfants)』에서 지능을 변화시킬 수 없는 고정량으로 보는 견해를 비판하고, 교육과 훈련을 통한 지적 기능의 발달 가능성을 강조함.
로버트 오펜하이머
로버트 오펜하이머 J. Robert Oppenheimer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행정가. 1920~30년대 양자역학·핵물리학·천체물리학을 연구해 보른-오펜하이머 근사, 오펜하이머-필립스 과정, 중성자별과 중력붕괴 연구 등에 중요한 성과를 남겼으며, UC 버클리를 중심으로 미국 이론물리학 연구자와 학생 집단을 육성함. 제2차 세계대전 중 맨해튼 프로젝트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과학책임자로 핵무기 설계·개발을 지휘함. 전후에는 미국 원자력위원회 일반자문위원회 의장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핵에너지의 국제 통제와 수소폭탄 개발 문제에 관여했으나, 1954년 보안 청문회를 거쳐 보안 인가를 잃음. 1963년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았으며, 2022년 미국 에너지부는 절차상의 중대한 문제와 불공정을 이유로 1954년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을 무효화함.
안상호
안상호 安商浩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전반에 활동한 의사. 관립일어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하고 일본 의사 개업 자격을 취득했으며, 1907년 귀국한 뒤 서울 종로에서 개인 진료소를 운영함. 대한제국 황실과 이왕직의 촉탁의·전의로도 활동했고, 1908년 한국인 의사들이 조직한 의사연구회의 부회장을 맡음. 한편 일제의 식민 통치가 본격화된 뒤에는 이토 히로부미 국민대추도회 준비위원, 관선 경성부협의회원, 경성신사 씨자총대, 내선융화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경성 종로금융조합 조합장, 동민회 회원·평의원 등을 지냄.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서는 자신의 가정이 ‘일선동체’와 ‘내지화’의 모범 사례로 소개되는 데 호응함.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러한 행적을 친일·부일 협력으로 평가하지만, 안상호는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음.
돌리 파튼
돌리 파튼 Dolly Parton 미국의 싱어송라이터·가수·배우·사업가·자선가. 컨트리 음악을 기반으로 「Jolene」, 「I Will Always Love You」, 「9 to 5」 등의 대표곡을 남겼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 약 60년에 걸쳐 활동하면서 컨트리 음악을 미국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장한 대표적인 음악인 가운데 한 명. 음악과 연기뿐 아니라 돌리우드와 돌리우드 재단을 운영하고, 1995년 어린이에게 무료 도서를 보내는 이매지네이션 라이브러리를 설립하는 등 사업·자선 활동 전개. 1999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 202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2026년 8월 25일 80세로 사망.
빈트 서프
빈트 서프 Vint Cerf 로버트 칸과 함께 인터넷의 기본 통신 규약인 TCP/IP를 설계한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서로 다른 패킷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인터네트워킹 구조를 정립하고 이를 실제 프로토콜 체계로 발전시키며 현대 인터넷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함. 1943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UCLA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를 받음. 1970년대 로버트 칸과 TCP를 공동 설계한 뒤 1976년 DARPA에 합류해 인터넷 프로그램과 패킷 통신 연구를 이끌었으며, 이후 MCI와 CNRI에서 상용 전자우편과 인터넷의 연결을 추진함. 인터넷 소사이어티 초대 회장과 ICANN 이사회 의장을 맡아 기술 개발뿐 아니라 인터넷 표준화와 거버넌스의 제도화에도 관여함. 1990년대 후반부터 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행성간 인터넷 연구를 추진했으며, 2005년 구글에 부사장 겸 수석 인터넷 전도사로 합류해 인터넷의 미래·접근성·상호운용성 문제를 다룸. 2004년 로버트 칸과 튜링상을 공동 수상하고 2005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으며, 청각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접근성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인터넷 기술의 대표적 선구자.
쿠사마 야요이
쿠사마 야요이 Yayoi Kusama 일본의 전위예술가·소설가. 1929년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환시와 환각 속 점·그물·식물 형태를 반복과 증식의 시각언어로 발전시킴.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1958년 뉴욕에 정착한 뒤 ‘인피니티 네트’ 회화, 남근 형태를 반복한 소프트 스컬프처 ‘어큐뮬레이션’, 거울과 반복 오브제를 결합한 ‘인피니티 미러 룸’, 보디 페인팅과 ‘자기소멸’ 퍼포먼스 등 회화·조각·설치·영화·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작업을 전개함. 1973년 일본으로 귀국한 뒤 정신의료기관 세이와 병원에 거주하며 인근 작업실에서 창작을 이어갔고, 소설·시·자서전 등 문학 활동도 병행함. 1980년대 후반 이후 국제 회고전과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단독 대표 참가를 계기로 재평가가 본격화됐으며, 물방울무늬와 호박, 무한 증식의 공간을 결합한 작품으로 세계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잡음. 2016년 일본 문화훈장을 수훈했고 2017년 도쿄에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이 개관했으며, 생의 마지막까지 회화 작업을 계속하다 2026년 8월 14일 97세로 사망함.
존 카치오포
존 카치오포 John T. Cacioppo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사회신경과학의 창시자. 시카고 대학교 심리학 티파니·마거릿 블레이크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인지·사회신경과학 센터를 설립·이끈 인물. 사회적 유대와 단절이 인간의 생리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며 심리학의 지평을 신경과학으로 확장한 선구자로 평가됨. 1990년대 초 오하이오 주립대의 게리 번슨과 함께 '사회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이라는 용어와 학문 분과를 제창한 주인공. 사회적 힘이 어떻게 '피부 밑으로' 파고들어 신경·내분비·면역계에 작용하는지를 뇌영상·혈압·호르몬·유전자 발현 등 다층적 분석으로 추적하는 학제간 접근을 정립함. 초기에는 리처드 페티와 함께 설득 심리학의 정교화 가능성 모델(ELM)을 발전시킨 태도·설득 연구의 대가이기도 함. 특히 만성적 외로움을 하나의 증후군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고립이 정신 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을 비만·흡연에 버금가게 해친다는 사실을 실증해 대중적 관심을 이끈 학자. 미국심리과학회 회장(2007~2008)을 역임했고, 저서 『외로움』(2008)을 통해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전달함.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심화한 유산으로 기억됨.
명진 (승려)
명진 (승려) Myeongjin 대한민국의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이자 불교계 개혁·사회참여 운동가.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으며,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에 참여함. 제11·12대 중앙종회의원과 중앙종회 부의장을 지냈고, 2005년부터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맡아 남북 불교 교류와 통일 관련 활동에 참여함. 2006~2010년 서울 봉은사 주지를 지내며 1000일 동안 매일 1000배를 올리는 기도를 수행하고 사찰 재정을 외부에 공개하는 등 사찰 운영 개혁을 추진함. 이명박 정부 시기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과정에서 정치권 외압 의혹을 제기하고 조계종 지도부를 비판했으며, 2017년 조계종에서 제적됨. 이후 제적 무효 소송에서 2025년 1심과 2026년 항소심 모두 승소했고, 조계종과 상고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승적을 회복함. 2026년 8월 22일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구조된 뒤 사망함.
보니 타일러
보니 타일러 Bonnie Tyler 보니 타일러(Bonnie Tyler, 1951~2026)는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와 극적인 록 발라드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웨일스 출신 가수임. 본명은 게이너 홉킨스(Gaynor Hopkins)로, 1970년대 중반 데뷔한 뒤 ‘Lost in France’와 ‘It's a Heartache’가 히트하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림. 성대 수술 이후 형성된 특유의 음색을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발전시켰으며, 1980년대 초 작곡가 겸 프로듀서 짐 스타인먼과 협업하면서 음악적 전환점을 맞음. 1983년 발표한 ‘Total Eclipse of the Heart’는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차트 1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 앨범 『Faster Than the Speed of Night』도 큰 성공을 거둠. 영화 『풋루스』에 사용된 ‘Holding Out for a Hero’ 역시 오랫동안 사랑받는 대표곡이 됨. 이후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꾸준히 음반과 공연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3년에는 영국 대표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함. 음악에 대한 공로로 2022년 대영제국 훈장 MBE 수훈자로 선정됐으며, 약 반세기에 걸친 활동을 통해 1980년대 파워 발라드와 팝 록을 상징하는 가수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함. 2026년 7월 8일 포르투갈에서 75세로 사망함.
백인천
백인천 白仁天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 1963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1975년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으로 합류함. 그해 타율 0.412를 기록해 현재까지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한 시즌 4할 타자로 남아 있음. 은퇴 후 MBC 청룡·LG 트윈스·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 등의 감독을 맡음. 한일 프로야구에서 장기간 선수로 활동하고 KBO 리그 원년을 선수 겸 감독으로 이끈 한국 프로야구 초기의 대표적 인물. 2026년 8월 15일 사망.
안창호
안창호 Ahn Chang-ho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사상가. 실력양성론(實力養成論)에 입각해 교육·산업·인격 수양을 통한 민족 역량 강화를 독립운동의 근간으로 삼은 인물. 국내에서는 강서 점진학교와 평양 대성학교를 세우고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해 국권회복운동을 이끌었으며, 미국에서는 공립협회·대한인국민회·흥사단을 창립해 재미 한인사회를 결집.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로서 통합 임시정부 수립과 연통제·교통국 조직을 주도. 무실(務實)·역행(力行)과 인격 혁명을 강조한 흥사단 운동의 창시자이자 실력양성운동의 대표적 사상가. 1932년 윤봉길 의거 직후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수감된 뒤 1938년 옥고 후유증으로 별세.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한국 근대 민족운동의 지도적 인물.
김복동
김복동 Kim Bok-dong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전시 성폭력 근절과 여성·평화 인권을 위해 활동한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에 동원되어 약 8년간 중국·홍콩·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일본군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입음. 1947년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귀국한 인물. 오랜 침묵을 깨고 1992년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린 대표적 증언자. 같은 해부터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여했고, 1993년 빈 세계인권대회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증언하며 전시 성폭력을 인권 의제로 끌어올림. 자신이 받은 상금과 모은 돈을 무력분쟁 지역 성폭력 피해 여성, 재일 조선학교 학생 등을 위해 기부한 기부 실천가이기도 함. 2012년 길원옥과 함께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발족했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에 반대하며 명예 회복과 일본의 공식 사죄·법적 배상을 끝까지 요구함. 2019년 1월 별세했으며,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됨. 피해자에서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나아간 삶으로 국내외에서 추모되는 인물.
미카엘 비데니우스
미카엘 비데니우스 Ulf Michael Widenius MySQL과 MariaDB를 만든 핀란드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기업가. ‘몬티(Monty)’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데이비드 악스마르크·알란 라르손과 함께 MySQL을 창립하고 핵심 개발자로 활동함. MySQL을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성장시키는 한편 상용 라이선스를 병행하는 이중 라이선스 모델을 구축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대표적인 사업화 사례를 만들어냄. 2008년 MySQL AB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인수된 뒤 개발 방향을 둘러싼 갈등으로 회사를 떠났으며, 오라클의 썬 인수가 추진되자 MySQL의 독립성과 개방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함. 이후 기존 MySQL 코드를 기반으로 MariaDB를 시작하고 MariaDB 재단 설립에 참여하면서 MySQL 계열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 생태계의 독립적 계보를 이어간 인물임. 현재도 MariaDB의 창립자이자 핵심 개발자로 활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