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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조선)
인물

세종 (조선)

世宗ko-Hani세종Sejongen세종대왕조선 세종King SejongenSejong the Greaten

조선의 제4대 국왕(재위 1418~1450). 이름은 이도이며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18년 즉위함. 집현전을 중심으로 학술·편찬 사업을 확대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며, 공법·과학기술·예악·국방·통치제도를 정비해 조선 전기 국가 체제의 기틀을 확립한 군주.

29 타임라인

기본 정보

출생 1397. 05. 15
사망 1450. 03. 30
국적 KR
성별 남성

추가 정보

세종은 태종이 확립한 왕권과 행정 체제를 계승해 국정을 운영함. 즉위 초기에는 상왕 태종이 군사권을 행사했으나 1422년 태종 사망 뒤 친정을 본격화함. 1420년 집현전을 학술 기관으로 정비해 인재 양성과 경연, 제도 연구, 서적 편찬을 추진했으며, 1436년에는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서사제로 전환해 의정부의 정책 심의 기능을 확대함.

농업·의학·천문·인쇄·음악 분야에서 국가 주도의 조사와 편찬, 기구 제작을 확대함. 『농사직설』과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자격루·앙부일구·측우기 등 시간·천문·기상 관측 기구를 개발·보급했으며, 갑인자 주조와 『칠정산』 간행을 추진함. 이러한 성과는 세종 개인뿐 아니라 집현전 학자, 관료, 기술자들이 참여한 장기적인 국가 사업의 결과임.

1443년 음력 12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시험과 연구를 거쳐 1446년 해례를 갖춘 『훈민정음』을 간행·반포함. 최만리 등 일부 신료의 반대가 있었으나 새 문자를 행정과 교육, 번역에 활용하며 보급을 추진함. 오늘날 한글로 이어지는 독자적 문자 생활의 기반을 마련한 업적임.

전세 제도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1430년 약 17만 명의 의견을 수렴하고 장기간의 논의를 거쳐 1444년 공법 최종안을 마련함. 다만 세종 재위 중 시행은 하삼도 일부 지역에서 시작됐으며 전국 확대는 후대까지 이어짐. 북방에서는 여진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과 4군 6진 설치를 추진해 압록강·두만강 방어 체계를 강화함. 이 과정에서 행성 축조와 사민입거에 막대한 인력·물력이 동원됐고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과 도망 등 부작용도 발생함.

세종 치세는 후대에 이상적인 유교 군주 정치와 문화적 성취의 대표 사례로 기억됨. 동시에 그 성과를 왕 개인의 천재성으로만 환원하기보다 관료·학자·기술자의 협업, 전근대적 신분 질서, 군사적 팽창과 동원이라는 조건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음.

타임라인

29
1397 1건
629년 전
1418 1건
608년 전
1419 1건
607년 전

군사권을 쥔 상왕 태종이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 정벌을 명함.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만 7,285명을 이끌고 1419년 6월 19일 주원방포를 출발해 기해동정을 감행. 대마도의 왜구 근거지를 공격하고 이후 대일 통교 질서가 재편되는 계기가 된 작전.

1420 1건
606년 전
1422 1건
604년 전
1426 1건
600년 전
1429 1건
597년 전
1430 1건
596년 전
1433 2건
593년 전

세종의 명을 받은 유효통·노중례·박윤덕 등이 고려의 『향약제생집성방』을 증보하고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와 치료법을 체계화한 『향약집성방』 85권을 편찬함. 향약의 명칭·산지·채취법과 처방을 정리해 중국산 약재 의존을 줄이고 국내 약재 활용을 확대하려 한 국가 의학 사업.

1434 4건
592년 전

세종이 최윤덕·김종서 등을 보내 압록강·두만강 방면에 군현과 방어 거점을 설치하는 4군 6진 개척을 추진함. 북방 방어선을 강화했으나 여진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장기간의 성곽 축조와 사민입거가 병행됐으며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과 도망 등 부작용도 발생함.

세종의 명으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해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함. 반구형 눈금판에서 시각과 절기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공중 시계이며 정확한 제작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순지가 관련 의상 제작의 책임자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됨.

1436 1건
590년 전

세종이 6조가 국왕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하던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가 안건을 먼저 심의한 뒤 국왕의 재가를 받는 의정부서사제로 국정 운영 방식을 전환함. 집현전과 관료층의 성장 위에서 의정부의 정책 조정·심의 기능을 확대하고 왕권과 신권의 운영 방식을 조정한 변화.

1441 1건
585년 전
1442 1건
584년 전
1443 2건
583년 전

조선이 대마도주와 계해약조를 맺어 대마도에서 해마다 보낼 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하고 세사미두 200석, 체류 기간과 어업 허가 등을 규정함. 1419년 대마도 정벌과 1426년 삼포 개항 이후 왜구 억제와 교역 허용을 결합해 형성한 대일 통교 질서의 제도화.

1444 2건
582년 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 등이 새 문자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문제, 한문 학습 저하 우려, 이두와의 관계, 형정 처리에 새 문자를 사용하는 문제 등을 제기했으나 세종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운서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를 들어 반박함. 상소 참여자들은 의금부에 하옥됐다가 대부분 이튿날 석방되고 정창손은 파직됨.

1445 3건
581년 전

세종 대 조정이 태조·정종·태종실록을 네 질로 등사해 한양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함. 한 곳의 재난으로 기록 전체가 소실되는 일을 막기 위한 분산 보존 체계로, 조선 전기 4대 사고제의 기틀 확립. 임진왜란 때 세 곳의 사고가 소실된 가운데 전주사고본이 보존되어 조선 전기 실록 전승의 기반이 됨.

세종의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와 전의감 의관들이 중국·고려의 의서 150여 종에서 이론과 처방을 뽑아 병증별로 분류한 『의방유취』 365권을 편찬함. 동아시아 의학 지식을 대규모로 집성한 국가 편찬 사업으로, 세종 대 의학 정책이 향토 약재 정리에서 종합 의학 지식 체계화로 확장된 결과.

1446 2건
580년 전
1447 1건
579년 전

정인지·권제·안지 등이 조선 왕실 선조의 행적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를 편찬하고 한글 가사와 한문 번역·주해를 갖춘 책으로 간행함. 1445년에 본문과 한시가 마련되고 1447년에 주해와 간행이 완성됐으며,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초기 국문 문헌이자 새 문자의 국가적 활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

1448 1건
578년 전

세종 대 조정이 개량한 화포의 주조법과 규격, 화약 제조·사용법을 그림과 함께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간행해 군사 기밀로 보관함. 세종이 군기감의 화포 개량과 발사 시험을 직접 지휘한 뒤 1445년 각 도에 새 규격의 화포를 주조하게 한 사업을 집대성한 군서.

1450 1건
576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