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조정, 《용비어천가》 간행
한글 가사와 한시로 된 《용비어천가》에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한문 주해를 붙여 10권 5책으로 간행함. 최항·박팽년·강희안 등이 주해와 음훈 작업에 참여했으며, 왕실 선대의 행적에 관한 기록과 가사의 배경을 책에 함께 수록함.
한글 가사와 한시로 된 《용비어천가》에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한문 주해를 붙여 10권 5책으로 간행함. 최항·박팽년·강희안 등이 주해와 음훈 작업에 참여했으며, 왕실 선대의 행적에 관한 기록과 가사의 배경을 책에 함께 수록함.
《용비어천가》 제39장 주해에 집안 지역의 성과 큰 비석에 관한 기록을 수록함. 이 비석은 오늘날 광개토왕릉비를 가리킨 것으로 이해되지만, 당시 기록은 주변 유적을 금나라의 것으로 설명함.
세종이 《용비어천가》 550본을 여러 신하에게 내려줌. 《세종실록》에 배포 수량과 대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왕실 선대의 행적을 노래한 책을 조정의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 일.
세종이 의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삼은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을 공적·사적 연향에 통용하도록 함. 왕실 선대의 공덕을 노래하는 음악을 종묘에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의례와 잔치에서 사용하도록 정한 조치.
의정부는 예조의 공문을 바탕으로 왕실의 공적을 위아래에서 함께 노래하게 하자는 뜻을 밝힘. 조참과 외교문서를 보내거나 황제의 조칙을 맞는 행차 등에 사용할 곡과 궁조도 구체적으로 제안했으며, 세종이 이를 따름. 책의 간행·하사와 별도로 노래의 연주 장소와 사용 절차를 제도로 정한 일.
실록은 세종이 《용비어천가》에 관현악을 붙이고 빠르기를 조절해 세 곡을 만들었으며 악보도 갖추었다고 기록함. 한글 가사를 노래하는 치화평·취풍형과 한문 가사를 사용하는 여민락이 궁중 악무의 구성곡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