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당진에서 한기중이라는 이름으로 출생함. 이후 법명 명진(明眞)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가 됨.
명진 (승려)
대한민국의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이자 불교계 개혁·사회참여 운동가.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으며,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에 참여함. 제11·12대 중앙종회의원과 중앙종회 부의장을 지냈고, 2005년부터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을 맡아 남북 불교 교류와 통일 관련 활동에 참여함.
2006~2010년 서울 봉은사 주지를 지내며 1000일 동안 매일 1000배를 올리는 기도를 수행하고 사찰 재정을 외부에 공개하는 등 사찰 운영 개혁을 추진함. 이명박 정부 시기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과정에서 정치권 외압 의혹을 제기하고 조계종 지도부를 비판했으며, 2017년 조계종에서 제적됨. 이후 제적 무효 소송에서 2025년 1심과 2026년 항소심 모두 승소했고, 조계종과 상고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승적을 회복함. 2026년 8월 22일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구조된 뒤 사망함.
기본 정보
타임라인
13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함. 이후 군 복무와 베트남전 참전을 거쳐 1974년 법주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본격적인 승려 생활을 이어감.
명진 스님, 조계종 종단개혁에 참여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위원으로 참여해 1994년 종단개혁 과정에 관여함. 이후 제11·12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내고 1998년 중앙종회 부의장에 오르는 등 종단 내부에서 개혁 성향의 중진으로 활동함.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명진 스님을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으로 임명함. 명진 스님은 앞서 민추본 창립 때부터 상임집행위원장과 부본부장을 맡아 활동해왔으며, 본부장으로서 북녘동포 지원과 남북 불교 교류·통일 관련 사업을 이끌게 됨.
조계종 총무원이 서울 봉은사 주지로 명진 스님을 임명함. 이후 봉은사를 도심 수행도량으로 만들겠다는 방향 아래 수행과 사찰 운영 개혁을 함께 추진함. 재임 중 봉은사는 재정을 외부에 공개하는 등 투명성 강화를 시도했으며, 명진 스님의 1000일 기도도 이 시기에 진행됨.
봉은사 주지 취임 직후 1000일 동안 매일 1000배를 올리겠다는 기도를 시작함. 새벽·낮·저녁 예불에 나눠 절을 올렸으며, 봉은사를 실질적인 수행도량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수행이었음.
2006년 12월 시작한 1000일 1000배 기도를 회향함.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을 위해 2009년 5월 29일 한 차례 봉은사 밖으로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수행 기간 동안 산문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킴.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 시절을 상징하는 수행으로, 재정 공개 등 사찰 운영 개혁과 함께 당시 봉은사의 변화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기록할 가치가 큼.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조계종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과정에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함. 안상수가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정권에 비판적인 봉은사 주지를 문제 삼았다는 말을 배석자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힘.
안상수는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사실은 인정했으나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전면 부인함. 이후 당시 만남에 배석했다는 김영국이 명진 스님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종교계와 정치권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됨.
조계종 초심호계원이 종단 지도부 등에 대한 명진 스님의 비판 발언을 문제 삼아 제적 징계를 결정함. 명진 스님이 두 차례 심리에 출석하지 않아 궐석 상태에서 결정이 내려짐.
제적은 승적을 말소하는 중징계로, 명진 스님은 자신의 발언이 종단 내부의 비리와 문제점을 비판한 것이라고 반박함. 이 결정은 이후 장기간의 법적 분쟁으로 이어짐.
서울중앙지법이 명진 스님이 조계종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무효확인 소송에서 제적 처분이 무효라고 판결함. 재판부는 징계 목적에 비해 명진 스님이 받는 불이익이 지나치게 커 징계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판단함.
특히 종단 운영과 예산 집행을 비판한 일부 발언에 대해서도 단순한 비방보다는 종단 운영 개선과 투명성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함.
서울고법이 명진 스님과 조계종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제적 징계를 무효로 판단함. 명진 스님이 청구한 위자료 3억원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음.
조계종이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명진 스님 역시 상고하지 않기로 함. 양측은 오랜 대립을 끝내고 화합하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명진 스님의 승적도 회복됨.
조계종은 과거 종단 자산 환수 문제에 관한 사실 오인으로 명진 스님이 겪은 어려움에 유감을 표했고, 명진 스님 역시 종단을 거친 표현으로 비판했던 점에 유감을 표시함. 2017년 제적 이후 약 9년간 이어진 갈등의 실질적인 종결점임.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오전 9시 38분께 물에 떠 있는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전 10시 28분께 사망 판정을 받음. 세수 76세, 법랍 52년.
해경은 구조 당시 프리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던 점을 근거로 프리다이빙 연습 중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했으며 정확한 경위를 조사함. 불교계에서는 이날 입적한 것으로 표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