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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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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볼커
폴 볼커 Paul Volcker 1979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제12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내며 두 자릿수에 이르던 대인플레이션을 초고금리 정책으로 진압한 미국의 경제 관료이자 중앙은행가. 기준금리를 20%대까지 끌어올린 강도 높은 긴축은 '볼커 쇼크'로 불리며 극심한 경기 침체와 실업을 동반했으나, 1980년 초 두 자릿수에 이르던 물가상승률을 수년 만에 안정시킨 전환점으로 평가됨.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로 경력을 시작해 재무부 통화담당 차관,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거친 통화정책 전문가. 닉슨 행정부의 재무부 국제통화담당 차관으로서 1971년 달러-금 태환 정지를 골자로 한 닉슨 쇼크의 핵심 설계자 중 한 명으로 브레턴우즈 체제 종식 과정에 깊이 관여. 연준 의장 시절에는 통화량(은행 지급준비금) 목표 관리로 운용 방식을 바꿔 물가 통제 책임을 중앙은행이 정면으로 떠안는 새 정책 틀을 도입. 연준 퇴임 이후에도 공직 신뢰 회복과 금융 규제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간 인물. 2008년 금융위기 후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은행의 자기자본 투기거래를 제한하는 '볼커 룰'을 제안해 도드-프랭크법에 반영. 2013년에는 공공부문 역량 강화를 표방한 볼커 얼라이언스를 설립. 물가 안정을 위해 정치적 압력과 신변 위협을 무릅쓴 강단 있는 통화정책가로 기억됨.
대니얼 카너먼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판단과 의사결정의 심리, 그리고 행동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이스라엘·미국의 심리학자이자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인간이 불확실성 아래에서 판단하고 선택할 때 합리적 행위자 모형(호모 에코노미쿠스)에서 체계적으로 벗어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이며, 경제학의 인간관을 살과 피를 지닌 실제 인간으로 바꾼 인물.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와의 오랜 공동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직관적 판단에서 사용하는 어림짐작(휴리스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지 편향을 규명함. 또한 이득과 손실을 준거점 대비로 비대칭적으로 평가하고 손실을 더 크게 느낀다는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을 제시해, 기대효용 이론을 대체하는 서술적 의사결정 모형을 정립. 이 작업은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물고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의 토대를 마련. 빠르고 직관적인 사고(시스템 1)와 느리고 숙고적인 사고(시스템 2)의 이중 과정 틀을 대중화한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학계를 넘어 폭넓은 독자에게 영향을 끼침. 오늘날 행동경제학·실험심리학·정책 설계(넛지)·금융 의사결정 등 여러 분야의 지적 기반을 놓은 현대 사회과학의 주요 사상가로 평가.
조희대
조희대 Cho Hee-de 대한민국 제17대 대법원장이자 보수 성향의 원칙주의 법관으로 평가받는 법조인. 1957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6년 법관으로 임관, 서울형사지방법원을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사법연수원 교수·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대구지방법원장 등 재판과 사법행정 요직을 두루 거침.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대법관을 지내며 다수의견과 다른 소수의견을 자주 내 '미스터 소수의견'으로 불림. 대법관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등 주요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엄격한 법문 해석과 죄형법정주의를 강조하는 사법철학을 보임. 2023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빚어진 대법원장 공석 사태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국회 동의를 거쳐 그해 12월 제17대 대법원장으로 취임, 재판 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움. 취임 이후 2025년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무죄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결정이 사법의 정치 개입 논란으로 비화하며 사퇴·탄핵·특검 요구의 중심에 섬. 현직 대법원장으로서 수사 대상에 오르는 헌정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아 사법부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첨예한 논쟁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
이세돌
이세돌 Lee Sedol 공격적이고 변칙적인 전투 바둑으로 21세기 초 세계 정상을 다툰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 바둑 기사. 1995년 만 12세 4개월의 나이로 한국기원에 입단해 역대 5번째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웠고, 2003년 한국기원의 승단 규칙 개정 이후 유례없는 속도로 9단까지 승단. 후지쯔배·LG배·삼성화재배 등 국제 기전에서 통산 18회 우승하며 이창호에 이어 한국 기사 중 국제대회 최다 우승 2위 기록 보유. 날카롭고 호전적인 기풍으로 "센돌"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정석을 따르기보다 상대를 깊은 수읽기 싸움으로 끌어들이는 전투형 스타일로 유명. 2002년 3단의 신분으로 제15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당시 최저단 세계대회 제패 기록을 경신하는 등, 단위에 얽매이지 않는 실력으로 일찍부터 세계 정상급 기사로 평가.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다섯 번기 대국을 벌여 1승 4패로 패했으나, 제4국에서 "신의 한 수"로 불린 백 78수로 거둔 1승은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공식 승리로 기록. 2019년 11월 "인공지능은 이길 수 없는 존재"라는 말과 함께 프로 은퇴를 선언했으며, 인공지능과 인간 지성의 대결을 상징하는 인물로 널리 기억됨.
래리 테슬러
래리 테슬러 Larry Tesler 제록스 PARC와 애플을 거치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모델리스 편집, 잘라내기·복사·붙여넣기 개념의 발전에 기여한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의 선구자. 초기 개인용 컴퓨터가 전문가 중심의 명령어 체계에서 일반 사용자가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시각적 인터페이스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특히 사용자가 현재 소프트웨어의 “모드”를 기억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대상을 먼저 선택한 뒤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더 직관적인 편집 방식을 추구. 그의 설계 철학은 사용자가 소프트웨어의 내부 구조와 작동 방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사용자의 사고방식과 작업 흐름에 맞춰져야 한다는 관점에 기반. 이러한 문제의식은 “모든 시스템에는 줄일 수 없는 복잡성이 있으며, 그 복잡성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개발자·시스템 사이에서 이동한다”는 테슬러 법칙, 즉 복잡성 보존의 법칙으로 확장. 단순한 인터페이스는 복잡성이 사라진 결과가 아니라, 설계자와 시스템이 그 복잡성을 대신 감당한 결과라는 통찰 제시. 래리 테슬러의 작업은 오늘날의 잘라내기·복사·붙여넣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모델리스 편집, 사용자 중심 설계, 현대 UX 원칙의 중요한 역사적 기반으로 평가. 복잡한 기술을 사용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으로 남겨두지 않고, 더 자연스럽고 예측 가능한 경험으로 바꾸려 한 인물. 사용자에게 보이는 단순함과 시스템 내부의 복잡성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게 만든 현대 인터페이스 설계의 주요 사상가.
노상원
노상원 Noh Sang-won 국군정보사령관을 지낸 대한민국 군 출신 인물. 12·3 비상계엄 당시 공식 직책 없이 비선에서 계엄을 사전 기획한 핵심 설계자로 지목됨. 부정선거 의혹 수사를 명분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체포 등을 구상한 별도 계획을 마련한 혐의로 내란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되어 2026년 2월 1심에서 징역 18년 선고.
이극로
이극로 Yi Geuk-ro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 분단 이후 북한에 이르기까지 우리말과 글의 보존·체계화에 평생을 바친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 호는 고루.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 동제대학 예과와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현 훔볼트대학)을 거치며 학문을 닦았고, 유학 시절 베를린대학에 유럽 최초의 조선어 강좌를 직접 개설해 무보수로 우리말을 가르친 인물. 1929년 귀국 후 조선어연구회(뒷날 조선어학회)에 합류해 간사장·회장을 맡으며 조선어사전 편찬, 한글 맞춤법 통일안·조선어 표준말 사정·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제정을 실무에서 이끈 한글 운동의 기획자이자 추진자.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가장 핵심 인사로 지목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광복으로 출옥. 해방 후 재건된 조선어학회 회장으로 한글 연구를 다시 이끌며 《조선말 큰사전》 편찬 사업을 재개. 1948년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북에 잔류하여, 이후 무임소상·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내고 1966년 이후 북한의 언어 규범화 운동인 문화어 운동을 주도. 분단으로 인해 남북 양쪽에서 오랫동안 온전히 조명받지 못했으나, 우리말의 과학적 연구와 보존에 남긴 자취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한글 운동의 대표적 인물. 2019년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 류정환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짐.
노태악
노태악 Roh Tae-ak 1990년 법관으로 임관해 여러 법원을 거친 뒤 2020년부터 2026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대한민국의 법조인. 대법관 재임 중이던 2022년 5월부터 관례에 따라 제22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며 전국 단위 선거 관리를 총괄한 인물. 경상남도 창녕 출신으로 한양대학교 법학과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 형사·지식재산권 등 다양한 재판 실무를 거친 법관으로 평가되나, 선관위원장 재임 기간에는 간부 자녀 특혜채용 논란과 선거 관리 부실 문제로 거듭 사과하며 비판에 직면. 2026년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에도 지방선거 관리를 위해 위원장직을 유지하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법관.
에릭 슈미트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 구글을 작은 스타트업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거대 기술 기업으로 키워낸 경영자이자 컴퓨터 과학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노벨 회장 겸 CEO를 거쳐, 2001년부터 2011년까지 구글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며 창업자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회사를 이끈 미국의 기업인.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 둘이 이끌던 신생 구글에 노련한 전문 경영인으로 합류해 이른바 '어른의 감독(adult supervision)' 역할을 맡았다는 평가. 검색 기반 광고 사업 모델을 정착시키고 2004년 기업공개(IPO)를 성공시키며 구글의 급성장과 상장을 주도. 2011년 CEO직을 페이지에게 넘긴 뒤에는 회장·집행위원장으로서 대외 관계와 정책·기술 자문을 담당. 구글과 알파벳을 떠난 뒤에도 미국의 인공지능·국가안보 정책 논의에 깊이 관여하고 자선·과학 투자 활동을 이어 온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경영자이자 기술 정책 인사. 엔지니어 중심 창업 문화와 전문 경영의 결합이라는 현대 빅테크 경영 모델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
넬슨 록펠러
넬슨 록펠러 Nelson Rockefeller 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존 D. 록펠러의 손자로 태어나, 막대한 가문의 부를 공직과 자선·예술 후원에 결합한 미국의 정치인이자 자선가. 뉴욕 주지사를 네 차례 연임(1959–1973)하고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제41대 부통령(1974–1977)을 지낸 20세기 중반 미국 정치의 대표적 인물. 공화당 내 온건·자유주의 분파를 이끈 지도자로, '록펠러 공화당원'이라는 말의 상징. 주지사로서 큰 문제를 규정하고 자원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국가 건설형 통치를 추구 — 뉴욕주립대(SUNY)를 세계 최대 규모의 공교육 체계로 확장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라자·고속도로망 정비, 주(州) 예술위원회 창설 등 광범위한 공공 투자 단행. 그러나 1971년 애티카 교도소 봉기의 무력 진압과 1973년 강경한 '록펠러 마약법' 제정처럼 권위주의적 강경 통치의 그림자도 짙음. 1930~40년대에는 미주 관계 조정과 국무부 차관보로서 라틴아메리카 개발에 깊이 관여. 세 차례(1960·1964·1968)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에 도전했으나, 골드워터·레이건으로 이어지는 보수주의의 부상에 밀려 끝내 백악관에 닿지 못한 동부 기득권 자유주의 공화당의 정점. 현대미술관(MoMA) 운영과 방대한 미술 수집으로 20세기 미국 예술 후원사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 막대한 부와 공직, 예술이 한 인물에게 결합된, 전후 미국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공인.
젠슨 황
젠슨 황 Jensen Huang 젠슨 황은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기업가이자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경영자. 1993년 크리스 말라초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했으며, 그래픽 처리 장치인 GPU를 게임용 3D 그래픽 가속기에서 병렬 컴퓨팅과 인공지능 연산의 핵심 인프라로 확장시킨 인물로 평가됨. 그가 이끄는 엔비디아는 RIVA 128, GeForce, CUDA, Tesla, DGX, H100·Blackwell 계열 AI 가속기 등을 거치며 PC 그래픽 기업에서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함. 특히 CUDA 생태계와 GPU 기반 병렬 연산 전략은 딥러닝 연구와 생성형 AI 확산의 기반이 되었고, 엔비디아를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됨. 젠슨 황은 검은 가죽 재킷과 직접적인 프레젠테이션 스타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기술 비전과 제품 전략을 결합해 설명하는 상징적 경영자로 자리 잡음. 반도체, 게임, 데이터센터, 로보틱스, 자율주행, 소버린 AI를 연결하는 엔비디아의 확장 전략을 주도하며, 현대 AI 산업의 공급망과 컴퓨팅 패러다임을 이끄는 인물 중 하나.
김혜수
김혜수 Kim Hye-soo 김혜수는 1980년대 중반 데뷔 이후 영화와 드라마, 예능과 시상식 진행을 넘나들며 오랜 기간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에 자리해 온 배우. 어린 나이에 광고와 영화로 얼굴을 알린 뒤, 성숙한 연기력과 강한 존재감, 세련된 이미지로 스타성과 배우로서의 신뢰를 함께 구축한 인물. 영화 《타짜》, 《도둑들》, 《관상》, 《차이나타운》, 드라마 《장희빈》, 《시그널》, 《하이에나》, 《슈룹》 등에서 장르와 시대극, 범죄물, 법정물, 사극을 폭넓게 소화하며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대표적인 얼굴로 평가됨. 특히 카리스마와 지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는 데 강점을 보여, 한국 영상 콘텐츠에서 여성 주연의 가능성을 확장한 배우로도 언급됨. 또한 청룡영화상 장기 진행자로서 한국 영화계의 상징적인 행사와도 깊게 연결된 인물.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뿐 아니라 패션, 태도, 사회적 발언, 후배 배우들과의 관계에서도 독자적인 존재감을 보여 주며, 세대를 넘어 대중적 인지도와 업계의 존중을 함께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 배우.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Abbas Kiarostami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 뉴웨이브를 세계 영화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사진작가, 시인.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비전문 배우, 열린 결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을 통해 삶과 죽음, 진실과 허구, 인간의 존엄을 섬세하게 탐구한 인물. 단순한 서사보다 관찰과 여백을 중시하는 그의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시적 영화 언어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됨. 대표작으로는 어린 소년의 여정을 통해 윤리와 책임을 그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실제 사건과 재연을 결합해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묻는 《클로즈업》, 자살을 결심한 남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생의 감각을 되묻는 《체리 향기》 등이 있음. 특히 《체리 향기》는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이란 영화가 세계 예술영화의 핵심 흐름으로 인정받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됨.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세계는 거대한 사건보다 한 사람의 얼굴, 한 길의 풍경, 한 번의 대화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포착하는 데 특징이 있음.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으로 이어지는 이란 북부 3부작은 영화가 현실을 기록하는 동시에 현실을 다시 만들어내는 매체임을 보여준 작업으로 평가됨. 그의 영화는 미니멀하지만 가볍지 않고,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현대 영화의 언어를 확장한 거장의 궤적으로 남아 있음.
잭 니콜슨
잭 니콜슨 Jack Nicholson 잭 니콜슨은 미국의 배우, 영화감독, 제작자로, 20세기 후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배우 중 한 명. 특유의 냉소적인 미소와 폭발적인 에너지, 광기와 유머를 오가는 연기 스타일로 강렬한 존재감을 구축했으며, 반항적인 인물부터 권력자, 범죄자, 상처 입은 노인까지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한 인물. 1960년대 말 《이지 라이더》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차이나타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샤이닝》, 《배트맨》, 《어 퓨 굿 맨》,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디파티드》 등 여러 시대의 대표작에 출연함. 특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애정의 조건》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비평적 성취와 대중적 인지도를 동시에 확보함. 니콜슨의 필모그래피는 뉴 할리우드 시대의 반문화적 정서, 1970년대 미국 영화의 어두운 현실 인식, 1980~1990년대 스타 시스템의 변화, 장르 영화와 예술 영화의 경계 확장을 함께 보여주는 흐름. 과장된 카리스마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동시에 구현한 배우로 평가되며, 현대 영화사에서 ‘스타 배우’와 ‘연기파 배우’의 기준을 동시에 형성한 인물로 자리 잡음.
조용필
조용필 Cho Yong-pil 한국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작곡가로, ‘가왕’이라는 별칭과 함께 세대와 장르를 가로지른 상징적 인물. 1960년대 말 미8군 무대와 밴드 활동을 거쳐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1970년대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대중적 성공을 계기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음. 이후 록, 발라드, 트로트, 민요풍 가요, 신스팝, 댄스팝 등 다양한 장르를 흡수하며 한국형 대중음악의 폭을 넓힌 존재. 조용필의 음악적 위상은 단순한 히트곡의 누적보다, 시대마다 새로운 사운드와 공연 문화를 제시해왔다는 점에서 두드러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친구여」, 「허공」, 「모나리자」, 「꿈」, 「바운스」 등은 서로 다른 세대의 기억 속에 남은 대표곡으로, 대중성과 음악적 실험성을 함께 보여주는 사례.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한 라이브 중심의 활동은 한국 대중가수의 공연 형식을 한 단계 끌어올린 흐름으로 평가. 2010년대 이후에도 과거의 명성에 머무르지 않고 신곡 발표와 대형 콘서트를 이어가며 현역으로 활동. 2024년에는 정규 20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열었고, 2025~2026년에도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 일정이 이어지며 장기 활동의 현재성을 보여줌. 반세기가 넘는 활동 기간 동안 조용필은 한국 대중음악의 산업화, 장르 확장, 공연 문화, 세대 간 음악 기억을 관통하는 핵심 인물.
이명세 (1893년)
이명세 (1893년) Lee Myung-se 자는 성도(聖道), 호는 의산(義山), 창씨한 이름은 춘산명세(春山明世). 본관은 전의(全義).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성북구(城北區) 동소문동(東小門洞). 일제강점기의 유학자 겸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가 유교계를 식민통치와 전시동원 체제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임.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참사와 상임이사를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44년에는 조선총독부 직속 기구였던 경학원의 사성으로 임명됨. 그의 행적은 단순한 직업 활동보다 일제 말기 황민화 정책과 침략전쟁 협력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 활동으로 평가됨. 특히 일본 천황 중심의 국가관과 유교를 결합한 ‘황도유학’을 주장하고, 태평양전쟁과 징병제 실시를 유교적 명분으로 정당화한 점이 주요 친일 행위로 지적됨. 해방 이후 이명세의 행적은 친일 청산 논쟁 속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었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됨. 이명세의 사례는 일제 말기 유교계가 어떻게 식민 권력의 통치 이념과 전시동원 체제에 편입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다뤄질 수 있음.
조병옥
조병옥 趙炳玉 조병옥은 미군정청 초대 경무부장(1946~1948)으로서, 제주 4·3 사건의 발발과 진압 과정의 핵심 인물 중 하나. 제주 4·3 사건 역사적 평가에서 강경 진압을 주도한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지목.
이상열 (1929년)
이상열 (1929년) 김형욱 납치암살 사건의 현지 지휘자이자 유일한 핵심 증인. 1998년 안기부의 진상 규명 조사 당시 정보 요원의 비밀 유지 의무를 내세우며 증언을 끝까지 거부함. 자신과의 면담 내용을 차라리 'No'라고 기록해달라며 사건의 배후를 끝내 밝히지 않음.
케이트 윈슬렛
케이트 윈슬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