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남. 이후 테헤란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고, 광고·타이틀 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거치며 영화 이전의 시각 언어를 형성함.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 뉴웨이브를 세계 영화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사진작가, 시인.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비전문 배우, 열린 결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을 통해 삶과 죽음, 진실과 허구, 인간의 존엄을 섬세하게 탐구한 인물. 단순한 서사보다 관찰과 여백을 중시하는 그의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시적 영화 언어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됨.
대표작으로는 어린 소년의 여정을 통해 윤리와 책임을 그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실제 사건과 재연을 결합해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묻는 《클로즈업》, 자살을 결심한 남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생의 감각을 되묻는 《체리 향기》 등이 있음. 특히 《체리 향기》는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이란 영화가 세계 예술영화의 핵심 흐름으로 인정받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됨.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세계는 거대한 사건보다 한 사람의 얼굴, 한 길의 풍경, 한 번의 대화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포착하는 데 특징이 있음.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으로 이어지는 이란 북부 3부작은 영화가 현실을 기록하는 동시에 현실을 다시 만들어내는 매체임을 보여준 작업으로 평가됨. 그의 영화는 미니멀하지만 가볍지 않고,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현대 영화의 언어를 확장한 거장의 궤적으로 남아 있음.
기본 정보
타임라인
35이란의 아동지능개발연구소, 카눈(Kanun)에 합류해 영화 부문을 만드는 데 참여함. 이 기관은 이후 이란 뉴웨이브 영화의 중요한 산실이 되었고, 키아로스타미가 교육·아동·일상·관찰을 중심으로 한 영화 세계를 발전시키는 기반이 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브론즈 표범상을 수상하며 국제 영화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함. 이 수상은 이후 키아로스타미가 이란 영화의 대표적 작가로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계기가 됨.
클로즈업 개봉
칸 영화제에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상을 수상하며 작품 하나가 아니라 영화 경력 전체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받기 시작함. 1990년대 키아로스타미가 유럽 영화제 네트워크 안에서 세계적 작가로 자리 잡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건.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음. 이는 키아로스타미가 이란 영화감독을 넘어 프랑스와 유럽 예술계가 인정한 세계적 영화 작가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사건.
유네스코로부터 영화 경력에 대한 특별상인 페데리코 펠리니 메달을 받음. 같은 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함께, 키아로스타미가 세계 영화사의 주요 작가로 공인된 시기를 상징하는 사건.
키아로스타미의 시를 모은 《Walking with the Wind》가 영어 번역으로 출간됨. 그의 시 작업은 영화 속 여백, 침묵, 풍경, 생의 관찰과 연결되며, 그를 영화감독이 아니라 시인·사진가·시각예술가로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
ABC 아프리카 개봉
뉴욕 현대미술관 MoMA와 P.S.1이 영화·사진·설치를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 《Abbas Kiarostami: Image Maker》를 개최함. 미국에서 조직된 가장 포괄적인 키아로스타미 전시로, 그의 작업이 영화관을 넘어 미술관의 맥락에서도 해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줌.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연출하며 오페라 무대에 데뷔함. 영화의 미니멀한 관찰 방식과 시각적 절제를 무대예술로 확장한 사례.
영국 국립 오페라단(ENO)이 런던 콜리세움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연출의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공연함. 이 연출은 앞서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었으나, 키아로스타미 본인은 영국 비자 문제로 런던 공연에 참석하지 못함. 이 사건은 그의 작업이 영화 밖 무대예술로 확장된 사례이자, 이란 예술가가 국제 무대에서 마주한 이동의 제약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록됨.
치료를 위해 프랑스로 이동한 뒤 파리에서 76세로 사망함. 그의 죽음은 세계 영화계의 추모를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이란 내에서는 치료 과정과 환자의 알 권리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짐.
프랑스에서 운구된 뒤 테헤란 북쪽의 작은 마을 라바산(Lavasan)에 안장됨. 영화인과 문화계 인사, 시민들이 참여한 장례는 키아로스타미가 이란 안팎에서 지닌 상징적 위상을 보여주는 사후 사건으로 정리할 수 있음.
이란의학위원회가 키아로스타미 사망과 관련해 헤파린 과다 투여로 인한 대량 뇌출혈을 원인으로 발표함. 사후에도 그의 죽음은 이란 의료계의 책임, 환자의 권리, 공적 인물의 의료 정보 공개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짐.
파리 퐁피두 센터가 그래픽 작업, 사진, 영화 장면, 실험적 작업을 아우르는 대규모 회고전 《Where is Kiarostami?》를 개최함. 이는 키아로스타미를 영화감독만이 아니라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종합 예술가로 재조명한 사후 평가의 중요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