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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2.7 사건 (파업, 봉기)

(78년 전)

3·1절 발포 사건 이후 고조된 도민들의 저항 의식과 미군정의 강압적인 통치에 반발한 상태에서,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미군정의 단독선거 추진에 반대, 총파업과 무장 봉기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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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내용

당시 상황

  • 당시 전후 한국의 독립 문제 관련 1946년 11월 14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결의안이 채택
  • 이 결의안을 근거로 유엔은 한국 내 선거와 국회 구성, 정부수립 등의 문제를 지원하기 위해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을 1947년 1월 한국에 파견
  •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한반도에서 인구 비례에 따른 총선거 실시를 추진
  • 소련은 1948년 1월 22일, 위원단의 38선 이북 지역 입북을 거부
  •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위원단이 접근 가능한 지역 내에서의 선거 감시를 결정. 즉, 5월 10일 남한 단독 선거로 최종 결의

당시 김구, 김규식 등은 1947년 말부터 남한 단독 선거 반대, 남북 협상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치고 있었음. 단독 선거는 분단의 교착으로 이어지고 이는 미국의 단독 정부 수립 전략이라고 해석하했기 때문. 따라서, 1948년 초부터 파업, 시위, 선거 저지 운동 등 다양한 방법이 준비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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