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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처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은폐에 관여

(39년 전)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이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경찰은 2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을 축소하려 했고, 이 조작은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무너짐. 박처원은 같은 달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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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내용

은폐·축소 조작 관여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이 고문 끝에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은 대공수사 지휘라인의 핵심 인물로서 사건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경찰은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조한경·강진규 두 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 범위를 축소하려 함.

경찰 발표와 진상 은폐

경찰은 처음 박종철의 사망을 단순 쇼크사로 설명하며 고문 사실을 부인했고, 이후 부검 결과와 여론 압박으로 물고문 사실을 시인함. 이른바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표현은 1월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공식 발표에서 나온 것으로, 박처원은 그 발언의 직접 화자는 아니었음.

폭로와 구속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고문 가담자가 2명이 아니라 5명이고, 치안본부 간부들이 범인 축소·은폐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짐. 박처원은 유정방·박원택 등과 함께 5월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사건 은폐의 붕괴는 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과 민주화 요구를 결집시키며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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