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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102건

오라리 방화 사건

우익 청년단(대동청년단)이 제주읍 오라리 마을에 방화한 사건. 미군정은 불타는 마을을 비행기와 지상에서 촬영하여 '제주도의 메이데이 (May Day on Cheju-Do)''라는 영상물로 제작, 무장대의 소행으로 왜곡 홍보. 이 사건으로 평화 협상 결렬. 연대장 김익렬은 현장 조사를 통해 방화 주체가 우익 청년단임을 밝혀냈으나, 미군정에 의해 묵살되고 교체.

국방경비대와 무장대 간의 평화 협상

김익렬 9연대장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이 구억국민학교에서 직접 만나 협상을 벌임. 주요 내용은 무장대의 하산과 무장 해제, 군의 안전 보장. 합의를 봤으나 다음날 납치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겉잡을 수 없는 유혈 충돌로 치닫게 됨.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 전면 개방

제주 4·3 사건 당시 중산간 지역 초토화 작전 등으로 한라산 일대에 주민 통행이 금지됐던 조치가 해제. 7년 만에 한라산 입산 자유.

김달삼 게릴라부대 남침 및 사살

김달삼은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남침했다가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봉정리 전투에서 사살

제주도민, 예비검속 후 불법 학살

6·25 전쟁 발발 직후 경찰과 군이 제주도에서 혐의가 불분명한 민간인을 보도연맹원, 요시찰자 등으로 분류해 사전 구금(예비검속) 후 불법 학살. 모슬포 섯알오름 탄약고 터, 제주읍 정뜨르 비행장 등에서 250여 명(총 600~700여 명 추정)이 억울하게 희생. 국가 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학살.

또한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4·3 사건 관련자들도 즉결 처분.

제주도인민유격대 사령관 이덕구 사살

무장대 제2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가 경찰 토벌대와의 교전 끝에 사살. 김달삼 월북 이후 무장대를 지휘하던 이덕구 사살로 실질적인 무장항쟁 세력은 와해.

유재흥 사령관의 면정책 발표

유재흥 사령관은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주민들이 하산하여 귀순하면 모두 용서하겠다는 사면 정책을 발표. 실제로 많은 주민이 하산, 귀순.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 설치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가 설치 후 진압과 선무를 병용하는 작전이 전개.

제주도 2개 선거구 재선거

5·10 총선에서 무효 처리된 제주도 2개 선거구 정상 투표 완료. 북제주군 갑 독촉국민회 홍순녕, 북제주군 을 대한청년단 양병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