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있는 사립 여자고등학교로, 1906년 창성동에서 문을 연 진명여학교의 후신. 순헌황귀비의 교지·재정 후원과 엄준원의 설립·학교 운영, 여메례의 설립 실무 참여를 바탕으로 출발한 근대 여성교육 기관
보통과에서 중등과와 기예과로 교육과정을 넓히며 기초 교과와 외국어·과학·예체능을 함께 가르친 학교.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만세운동·항일시위와 1930년대 초 농촌계몽·문자보급 활동이 이어진 여성교육의 현장
광복 뒤 중·고등학교 분리를 거쳐 1987년 중학교를 폐교하고, 1989년 창성동에서 목동의 신축 교사로 이전한 학교. ‘진덕계명’의 뜻을 교명에 담고 나혜석·김명순 등 근대 여성 문화인들의 학업과도 연결된 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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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사실들 7건
트리비아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이순석이 진명의 교표를 도안. 등대·돛단배·파도와 둘레의 열일곱 광채를 배치하여, 학업으로 세상을 밝히고 굴하지 않고 전진한다는 뜻을 표현
3·1운동과 1920년대 말 항일투쟁에 이어, 1930년대 초 진명 학생들이 농촌계몽과 문자보급 활동에 참여. 학교 밖으로 한글 교육을 넓히려던 당시 학생운동에 동참
덕을 쌓고 학업을 닦아 세상을 밝힌다는 뜻의 교명 ‘진명’. 개교 초기에는 부덕과 근검·정숙을 중시하는 교육방침을 채택했으며, 오늘날의 교훈은 ‘진실·협조·창의’
6·25전쟁 중 폭격으로 파손된 창성동 강당 삼일당을 학교·재단·학부모·졸업생이 협력하여 재건. 이천승이 설계를 맡고 대림산업이 시공에 참여
순헌황귀비가 교지와 학교 운영 재원을 위한 토지인 전장을 지원. 엄준원이 학교 설립과 초대 교장을 맡고, 여메례가 설립 실무에 참여
나혜석이 진명여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1913년 일본 여자미술학교로 서양화 유학. 유학 중인 1914년 「이상적 부인」, 1918년 소설 「경희」를 발표하며 여성의 삶에 관한 문제를 제기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혜석초기 보통과에서 수신·한문·산술과 재봉·수예·창가·도화를 교육. 1922년에는 영어·일본어·역사·지리·수학·이과·음악·체조까지 포함하여, 가사·수공과 인문·자연과학·예체능 교과를 함께 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