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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대한노총·大韓勞動組合總聯合會

1950년대 대한민국의 전국적 노동조합 연합체로 활동한 대한노총. 1946년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과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의 계보를 이어, 1953년 노동관계법 제정 뒤 조직을 재편하여 1954년 4월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로 출범한 단체.

철도·부두 등 여러 산업의 노동조합을 아우르며 노동법 적용과 노동조건 문제를 다룬 중앙조직. 1957년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노동자 생활 향상, 노동법 집행과 개정, 노동운동의 자주성 등을 결의하고, 1958년 대회에서는 노동절을 전신 조직 결성일인 3월 10일로 변경한 단체.

1959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분립과 4·19혁명 뒤 지도부 재편을 거쳐, 1960년 11월 전국노협과의 통합대회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련) 출범에 참여. 통합 후에도 갈등이 남았으며, 1961년 5월 군사정권의 노동단체 해산과 8월 한국노총 재건은 후신 계보에서 일어난 별도의 변화.

‘대한노총’이라는 약칭을 전신 조직들도 사용하였으므로, 1946년 출범·1954년 재편·1960년 통합을 서로 구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는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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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타임라인 14건 · 1946–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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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961년
일자 유형 내용 관련 엔티티 출처·정밀도
1946 1건
1946-03-10 start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결성 서울 시천교회에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결성되고 홍윤옥이 위원장으로 선출된 사건.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의 노동 부문을 배경으로 출발한 전국적 노동단체이며,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 개칭과 1954년 총연합회 재편으로 이어진 전신 조직의 출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출처 2
1948 1건
1948-08-26 ~ 1948-08-27 change 대한노동총연맹으로 개칭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정부 수립 직후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대한노동총연맹으로 명칭을 바꾼 사건. 대한노총이라는 약칭을 유지하면서 선언과 조직 운영 방향을 조정한 전신 단계의 변화. 1954년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재편과 구별되는 1948년의 개칭.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처 2
1953 1건
1953-03-08 event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 공포 관보 제849호에 노동쟁의조정법(법률 제279호), 노동조합법(제280호), 노동위원회법(제281호)이 공포된 사건. 노동조합 조직, 노동쟁의 조정과 노동위원회에 관한 법적 틀을 마련한 조치. 기존 대한노총도 새로운 노동조합법에 맞춘 조직 재편을 추진하게 된 제도적 배경. 법 제정일과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의 1954년 재편 시기는 서로 다른 사건. 출처 2
1954 1건
1954년 4월 change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로 조직 재편 1953년 노동조합법 제정 이후 진행된 대한노총 조직 재편을 거쳐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가 출범한 사건. 임송자의 연구와 전국철도노동조합 연혁에서 확인되는 1954년 4월의 재편이며, 기존 대한노동총연맹의 계보를 이어받은 변화. 철도노조 연혁에서는 정대천·김주홍·김두한의 최고위원 선출을 함께 기록. 1946년 전신 조직 결성과 구별되는 1954년의 조직 재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처 3 · 월
1955 1건
1955-08-18 event 철도노동조합연맹과 교통부의 국유철도 단체협약 체결 대한노총 산하 철도노동조합연맹과 교통부가 국유철도 단체협약에 조인한 사건. 철도노조의 공식 역사에 따르면 김주홍 위원장과 이종림 교통부장관이 참석하고 48개 조항의 협약을 체결. 대한노총 중앙조직이 직접 서명한 협약은 아니며, 산하 조직이 노동관계법 제정 이후 단체교섭을 수행한 사례. 이후 임금·고용·복지 등의 논의는 국유철도노동협의회를 통해 진행. 철도노동조합연맹 출처 2
1957 2건
1957-05-22 event 노동절 날짜 변경 지시 이승만 대통령이 5월 1일 국제노동절을 공산주의 선전과 연결하여 비판하고, 이와 구별되는 노동자의 기념일을 정하도록 지시함. 국가기록원에 소개된 시정명령은 반공주의가 노동자의 기념일과 노동운동을 재편하는 기준으로 작용한 사실을 보여 줌. 이 지시에 따라 대한노총은 1958년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단체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음. 1957년의 대통령 지시와 1958년 노동단체의 결정은 구별됨.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의 법제화는 이후 1963년에 이루어졌음. 이승만, 노동절 출처 11957-10-25 event 대한노총 제10차 전국대의원대회 개최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노동자의 생활 개선, 노동쟁의에 대한 공동 대응, 노동법 집행 강화와 개정, 노동운동의 자주성 등을 결의한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소개된 결의문에 나타난 조직의 공식 목표이며, 실제 정치적 관계와 활동에 대한 역사 연구의 평가와는 구별되는 자기서술. 출처 2
1958 1건
1958년 10월 event 대한노총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와 노동절 날짜 변경 대한노총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노동절을 5월 1일 대신 전신 조직의 결성일인 3월 10일로 정한 결정.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날짜 변경 지시를 뒤따른 조치이며, 1959년 3월 10일 기념행사로 이어진 변화. 1958년 10월 대회에서는 김기옥 중심의 지도체제도 성립. 노동절 변경 결정과 지도체제 개편이 함께 이루어진 대회. ‘근로자의 날’ 명칭의 법제화는 1963년, 법정 날짜의 5월 1일 변경은 1994년의 별도 사건. 노동절 출처 3 · 월
1959 2건
1959-03-10 event 3월 10일 제1회 노동절 기념대회 개최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새로 정한 3월 10일 노동절의 첫 기념대회를 개최한 사건. 당시 대한뉴스는 경인지부 회원 약 2만 명의 참여와 선언문 낭독, 시가행진을 기록. ‘제1회’는 3월 10일로 날짜를 옮긴 뒤의 행사 차수를 뜻하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5월 1일에 열린 노동절 행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표현이 아님. 노동절 출처 21959-10-26 start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김말룡 등을 중심으로 대한노총과 별도의 중앙 노동조직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된 사건. 정치적 중립과 자주적인 노동운동을 내세운 조직으로, 대한노총 내부의 지도체제 갈등에서 분립한 전국노협의 출범. 임송자의 연구에서는 결성 단계의 참여 규모를 14개 노동조합으로 파악. 이후 대한노총과 1960년 통합대회를 추진한 단체이며, 1990년의 전노협과는 별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1959년) 출처 3
1960 2건
1960-05-09 change 대한노총 지도부 총사퇴 4·19혁명 뒤 노동조합 내부의 개편 요구가 확산되는 가운데 대한노총 간부들이 총사퇴한 사건. 기존 지도체제의 공백 속에 수습위원회를 통한 재조직과 조직 해체 여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전국노협과의 통합 모색으로 연결된 변화. 출처 21960-11-25 ~ 1960-11-27 change 대한노총·전국노협 통합대회와 한국노련 출범 대한노총과 전국노협이 통합대회를 개최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련)이라는 명칭과 강령을 채택한 사건. 민주화운동사전은 11월 26일 명칭 결정, 27일 속개와 중앙운영위원 선출, 30일 김말룡 임시의장 선출로 이어진 과정을 설명. 노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한 출범 과정이지만 지도부 구성과 대표성을 둘러싼 갈등까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었던 변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1959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처 3
1961 2건
1961년 5월 22일 포고 · 23일 해체 event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 제6호 공포와 노동단체 해산 5·16 군사정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포고 제6호를 공포하고 5월 23일을 기준으로 정당과 사회단체를 해체한 조치. 대한노총과 전국노협의 통합으로 출범한 한국노련을 비롯한 노동단체도 해산 대상에 포함. 1960년 통합 이전의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가 같은 이름으로 계속 존속하다가 단독 해체된 사건과는 구별되는 조직사적 단절. 같은 해 8월의 산별노조 중심 재건으로 이어진 변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처 31961-08-30 ~ 1961-08-31 event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재건 결성대회 5월 노동단체 해산 이후 한국노동단체재건조직위원회가 산별노조를 토대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결성대회를 개최한 사건. 군사정권 아래 재건 절차를 거쳐 이규철 중심의 중앙조직이 성립한 변화. 1946년 전신 조직의 결성이나 1960년 대한노총·전국노협 통합과 구별되는 1961년 재건 단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처 3

그 외 사실들 2건

트리비아

  • ‘대한노총’은 1946년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 1954년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에 걸쳐 쓰인 약칭. 약칭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각 시기의 정식 명칭과 조직 개편을 같은 사건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점.

  • 임송자의 「1950년대 노동조직과 이승만 · 자유당권력과의 관계」에서는 1954년 재편 이후 정대천을 매개로 대한노총과 자유당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1958년 김기옥 중심 지도체제 성립 뒤 내부 갈등이 전국노협 분립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

    한국사학보 제30호(2008), 153–189쪽의 연구자 분석. 단체가 내세운 노동운동의 자주성이라는 목표와 구별되는 역사적 평가.

갱신 2026-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