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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애국단

Korean Patriotic Corps

1931년 김구가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 1932년 이봉창의 사쿠라다몬 의거와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의거를 주도하고, 총독 처단과 관동군 수뇌부 공격 등 다른 거사도 계획함. 일본의 강경한 추적을 불러왔으나 중국 국민정부의 임시정부 지원이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한 조직. 독립운동의 외교·무장·의열 전략과 한중 관계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사례.

11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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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애국단

추가 정보

결성 배경

3·1 운동 이후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대 중반 이승만 탄핵과 지도부 교체, 재정난, 노선 대립으로 극심한 침체에 빠짐. 1931년 만보산 사건과 만주사변으로 항일 정세가 격화되자, 1927년 국무령을 거쳐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가 국무회의의 위임을 받아 특무 활동을 전담할 비밀결사로 한인애국단을 조직함.

의열 투쟁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이 도쿄 사쿠라다몬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짐. 이어 4월 29일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의 일왕 생일·상하이사변 전승 축하식장에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수뇌부를 살상함. 같은 시기 이덕주·유진식은 조선총독 처단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고, 최흥식·유상근은 국제연맹 릿튼조사단이 방문하는 다롄에서 관동군 수뇌부 처단을 준비했으나 모두 사전에 발각·체포됨.

파장과 유산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는 대대적인 주모자 색출에 나서 안창호·이유필 등 상하이 한인 지사들을 검거했고,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은 상하이를 떠나 오랜 피신 생활에 들어감. 그러나 이 의거들은 중국 국민정부가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되어 한중 항일 연대의 밑거름이 됨.

타임라인 11건 · 1931–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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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946년
갱신 2026-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