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영화에서 활동한 배우. 본명은 김경자, 예명은 최지희(崔智姬). 1940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6년 귀국한 뒤 경남 하동에서 성장.
1956년 《인걸 홍길동》과 《아름다운 악녀》에 캐스팅되며 영화계에 입문. 1958년작 《아름다운 악녀》의 은미, 《자매의 화원》(1959)의 명희, 《말띠 여대생》(1963)의 무용과 학생 등 관습에 도전하는 여성 인물을 연기. 1961년부터 1962년까지 미국 유학 뒤 복귀해 《김약국의 딸들》(1963)의 용란 역으로 제1회 청룡영화상과 제3회 대종상, 제7회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연기자.
1970년 《남대문 출신 용팔이》와 《팔도가시나이》 등 액션·코미디영화에서 활동한 뒤 1973년 은퇴하고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사업을 전개. 200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 경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으며, 한국영화인원로회 활동과 2011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 수상으로 영화계와의 관계를 지속.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악녀 최지희》(2004)와 《노라노》(2013)에도 등장.
2021년 10월 17일 별세. 한국영상자료원이 2022년 1월 출연작과 인물 다큐멘터리 18편을 모은 추모전을 개최한 영화사적 인물.
수록 이벤트가 없는 긴 구간은 빗금 두 개로 접어 표시합니다.
그 외 사실들 4건
트리비아
한국영상자료원이 2022년 추모전을 마련할 당시 《아름다운 악녀》·《청춘배달》 등 일부 초기 대표작의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고 안내한 기록.
2022년 추모전 안내의 자료 보존 상태에 한정한 설명.
《김약국의 딸들》에서 용란의 경상도 사투리를 직접 녹음. 한국영상자료원이 최지희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한 직접 녹음 사례로 소개한 연기 기록.
2011년 인터뷰 당시 한국영화인원로회 이사장으로 활동. 배우뿐 아니라 감독·촬영·조명 분야의 원로 영화인들이 참여하는 단체에서 교류와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고 설명.
활동 시점은 인터뷰 당시 기준이며 정확한 취임일을 확정한 기록은 아님.
최지희의 본명은 김경자. 2011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도왔던 영화 제작자 최남용의 성을 따 예명을 지었다고 설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