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전시 성폭력 근절과 여성·평화 인권을 위해 활동한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에 동원되어 약 8년간 중국·홍콩·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일본군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입음. 1947년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귀국한 인물.
오랜 침묵을 깨고 1992년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린 대표적 증언자. 같은 해부터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여했고, 1993년 빈 세계인권대회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증언하며 전시 성폭력을 인권 의제로 끌어올림. 자신이 받은 상금과 모은 돈을 무력분쟁 지역 성폭력 피해 여성, 재일 조선학교 학생 등을 위해 기부한 기부 실천가이기도 함.
2012년 길원옥과 함께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발족했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에 반대하며 명예 회복과 일본의 공식 사죄·법적 배상을 끝까지 요구함. 2019년 1월 별세했으며,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됨. 피해자에서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나아간 삶으로 국내외에서 추모되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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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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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공백 14년
1960 1970 1980 공백 45년
1992 1992–2000 5건 · 8년 사이에 밀집
1992-08-10 김복동,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첫 공개 증언
1993-06 김복동, 빈 세계인권대회에서 증언
2000
2000-12 김복동,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원고로 참여
2005 공백 10년
2010 2010–2019 9건 · 9년 사이에 밀집
2011-03 김복동, 동일본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 제안하고 첫 기부
2012-03-08 김복동·길원옥, 나비기금 발족
2015-12-28 김복동,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
2016-05-17 김복동, 재일조선학교 학생 위해 5천만원 기부해 장학사업 시작
2017-11-25 김복동, 여성인권상 상금 5천만원 기부해 김복동평화상 제정
2017-11 김복동, 여성인권상금 기부해 김복동평화상 제정
2019-01-28 김복동 사망
2019
2019-02-01 김복동 시민장 영결식,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거행
갱신 2026-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