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창호

Ahn Chang-ho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사상가. 실력양성론(實力養成論)에 입각해 교육·산업·인격 수양을 통한 민족 역량 강화를 독립운동의 근간으로 삼은 인물.

국내에서는 강서 점진학교와 평양 대성학교를 세우고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해 국권회복운동을 이끌었으며, 미국에서는 공립협회·대한인국민회·흥사단을 창립해 재미 한인사회를 결집.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로서 통합 임시정부 수립과 연통제·교통국 조직을 주도.

무실(務實)·역행(力行)과 인격 혁명을 강조한 흥사단 운동의 창시자이자 실력양성운동의 대표적 사상가. 1932년 윤봉길 의거 직후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수감된 뒤 1938년 옥고 후유증으로 별세.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한국 근대 민족운동의 지도적 인물.

35 타임라인
56 관련 링크
안창호

추가 정보

생애 개관

안창호는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청년기에 서울에서 신학문과 기독교를 접하고 계몽운동에 참여함. 1899년 고향 강서에 근대 학교인 점진학교를 세워 교육운동을 시작하고, 1902년 선진 교육을 배우고자 미국으로 건너감.

미주 한인사회의 결집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뒤 1903년 친목회, 1905년 공립협회를 조직해 흩어져 있던 재미 한인을 규합함. 1907년 귀국해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하고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국내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함. 국권 상실을 전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를 이끌었고,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립해 무실역행의 인격 수양 운동을 조직화함.

임시정부와 만년

3·1운동 직후인 1919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아 통합 임시정부의 기틀을 세우고,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을 모색함. 1932년 윤봉길 의거를 계기로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 뒤 옥고를 치름.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재수감되었고, 고문 후유증으로 1938년 3월 경성에서 별세함.

타임라인 35건 · 1878–1938

밀집 구간

구간을 선택하면 해당 기록으로 이동합니다.

보기
간격이 실제 시간에 비례합니다. 기록이 없는 구간은 길수록 멀리 벌어집니다.
수록 이벤트 분포 점을 선택하면 해당 이벤트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1878년부터 1894년까지 수록 이벤트가 없는 구간 접힘
1878년 1938년

수록 이벤트가 없는 긴 구간은 빗금 두 개로 접어 표시합니다.

1878 1878-11-09 안창호 출생
1890 공백 16년
1894 1894–1938 34건 · 44년 사이에 밀집
갱신 202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