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동진

朴東鎭zh

완창 공연을 대중적인 무대로 정착시키고, 잊힌 판소리의 재창작과 새로운 소재의 판소리로 활동 범위를 넓힌 대한민국의 명창. 호는 인당(忍堂).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이자 제2대 국립창극단장.

충남 공주 출생으로, 청소년기에 협률사 공연을 접한 뒤 소리꾼의 길에 입문. 김창진·정정렬·유성준·조학진·박지홍 등 여러 명창에게 배우며 서로 다른 소리의 특징을 접한 이력. 배운 소리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자신의 목과 공연 상황에 맞게 다시 구성하는 방식으로 형성한 예술세계.

해방 전후에는 창극단과 여성국극단 등의 공연 현장에서 노래뿐 아니라 작곡·편곡과 반주에도 참여. 1962년 국립국악원에 들어간 뒤 안정적으로 수련과 공연을 이어가며, 국악원에서 판소리 교육과 민속악의 비중을 넓힌 활동.

1968년 9월 30일 《흥보가》를 약 다섯 시간 동안 부른 공개 공연이 중요한 전환점. 이후 《춘향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로 이어진 장시간 연창을 통해, 유명한 대목만 듣는 무대와 구별되는 한 바탕 전체의 감상 경험을 널리 알린 인물.

《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숙영낭자전》처럼 소리 전승이 끊긴 작품의 사설에 새 가락을 붙이는 작업도 병행. 옛 소리를 그대로 되찾았다는 의미의 복제가 아니라,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부를 수 있게 만든 복원·재창작. 성서 이야기와 이순신의 생애를 판소리로 옮기며 소재의 확장도 시도.

1975년부터 1979년까지 국립창극단장으로 재임하며 도창과 작창, 창편곡 및 단체 운영에 참여. 독창자의 완창 무대뿐 아니라 여러 배우가 함께하는 창극의 제작과 발전에도 관여한 경력.

즉흥적인 아니리와 재담, 청중과 주고받는 호흡이 두드러진 공연 스타일. 방송과 광고를 통해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에게도 알려졌으며, 엄격한 가락의 계승과 현장성 사이에서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은 소리꾼.

1998년 공주에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열어 제자 교육에 힘썼고, 팔순 이후에도 장시간 공연을 계속한 말년. 2003년 사망 후 금관문화훈장 추서. 공연 녹음과 음반, 전수관 활동을 통해 이어지는 예술적 유산.

26 타임라인
4 사실
40 관련 링크
박동진

타임라인 26건 · 1916–2003

밀집 구간

구간을 선택하면 해당 기록으로 이동합니다.

보기
간격이 실제 시간에 비례합니다. 기록이 없는 구간은 길수록 멀리 벌어집니다.
수록 이벤트 분포 점을 선택하면 해당 이벤트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1916년부터 1947년까지 수록 이벤트가 없는 구간 접힘
1916년 2003년

수록 이벤트가 없는 긴 구간은 빗금 두 개로 접어 표시합니다.

그 외 사실들 4건

트리비아

기록

갱신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