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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두균

Ri Du Gyun·이두균·李斗均·Ri Tu-gyunen

충청북도 충주에 연고를 둔 비전향 장기수. 남측 언론의 ‘이두균’과 북측 관련 보도의 ‘리두균’이라는 두 표기로 알려진 인물.

한국전쟁 중인 1952년 4월 충주에서 체포되어 1969년 말 출소한 뒤, 1975년 7월 보안감호 처분으로 다시 수감되고 1989년 8월 재출소한 이력. 출소 후에는 다른 장기수들과 민중탕제원에서 생활하며 생계를 이어간 인물. 형 집행 이후에도 사회안전법에 따른 보안처분이 이어졌던 비전향 장기수의 사례.

2000년 8월 송환 희망을 밝혀 북측에 전달된 대상자 명단에 마지막으로 추가되었으며, 같은 해 9월 2일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간 비전향 장기수 63명 중 한 사람. 6·15 남북공동선언의 인도적 문제 해결 합의에 따른 송환이었으며, 9월 4일 북한이 송환자 전원에게 수여한 조국통일상의 수상자.

북송 후인 2010년에는 평양 운정관의 북송 장기수 공연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는 모습이 데일리NK의 영상 보도로 소개된 인물. 해당 보도에서 김정일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 낭송 장면이 확인되는 이력.

11 타임라인
4 사실
16 관련 링크

타임라인 11건 · 1926–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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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012년

그 외 사실들 4건

트리비아

  • 2000년 송환 보도에서 ‘이두균’으로 소개되고, 2010년 데일리NK의 같은 공연 기사 안에서는 ‘이두균’과 ‘리두균’으로 함께 등장하는 인물. 서로 다른 이름 표기로 남은 비전향 장기수의 보도 기록.

    北送장기수들, 결국 ‘김정일 찬양조’로 전락 - 데일리NK: https://www.dailynk.com/%E5%8C%97%E9%80%81%EC%9E%A5%EA%B8%B0%EC%88%98%EB%93%A4-%EA%B2%B0%EA%B5%AD-%EA%B9%80%EC%A0%95%EC%9D%BC-%EC%B0%AC%EC%96%91%EC%A1%B0%EB%A1%9C/

  • 연합뉴스가 이두균의 1991년 11월 이후 생활 장소로 소개한 민중탕제원. 최홍재의 회고에는 출소 장기수들이 함께 생활과 생업을 이어간 공간으로 등장하는 장소.

    북송 장기수의 통탄스런 절망 - 데일리NK: https://www.dailynk.com/%EB%B6%81%EC%86%A1-%EC%9E%A5%EA%B8%B0%EC%88%98%EC%9D%98-%ED%86%B5%ED%83%84%EC%8A%A4%EB%9F%B0-%EC%A0%88%EB%A7%9D/

기록

  • 1969년 출소 뒤 1975년 보안감호 처분으로 다시 수감된 이력. 총 수감기간을 단일 형사판결의 형량으로 읽을 수 없는 경과.

    보안 관찰법 - 국가기록원: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4392&sitePage=1-2-3

  • 2000년 8월 22일 리두균의 송환 희망이 추가 통보되면서 62명에서 63명으로 늘어난 대상자 명단.

    비전향장기수 북송 사연엇갈려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000822002900014

갱신 202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