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 17,405

정렬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20건

직원 100명 규모로 성장한 ASML이 필립스 연구소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펠트호번에 새 사옥과 공장을 짓고 이전함. 창고에서 출발한 신생 기업이 독립적인 생산 거점을 갖추기 시작한 시점으로, 펠트호번은 이후 회사의 본사이자 세계 반도체 노광 장비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음.

ASML

네덜란드 전자 기업 필립스가 1970년대부터 진행해 온 노광 장비 연구를 사업화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 업체 ASM 인터내셔널과 합작해 ASM 리소그래피라는 새 회사를 설립함. 에인트호번 필립스 사옥 옆 허름한 창고에서 출발했으며, 같은 해 첫 장비인 PAS 2000 스테퍼를 선보임. 오늘날 세계 반도체 산업을 좌우하는 노광 장비 기업의 출발점.

ASML

1977년 10월 25일 디지털 이큅먼트(DEC)가 VAX-11/780을 발표. 32비트 가상 주소공간과 VMS 운영체제를 특징으로 했으며 미니컴퓨터 산업과 컴퓨터 아키텍처 발전에 영향을 미침. 실제 출하가 시작된 1978년과 발표일은 구분됨.

1854년 10월 25일 크림 전쟁 발라클라바 전투 도중 영국 경기병대가 러시아 포병 진지로 돌격해 큰 피해를 입음. 명령 전달과 해석의 실패가 낳은 군사적 참사로, 테니슨의 시 《경기병대의 돌격》에 영감을 준 사건.

1990년 10월 25일 미국 스탠퍼드 의료진이 살아 있는 어머니의 폐 일부를 어린 딸에게 이식하는 선구적인 수술을 시행. 생체 기증자 폐엽 이식 발전의 중요한 사례로, 수혜자의 치료와 기증자의 안전에 관한 의료윤리 문제도 제기함.

1944년 10월 25일 필리핀 사마르섬 동쪽 해상에서 일본 해군 구리타 함대가 미군 호위항공모함 부대와 교전. 미군 구축함과 함재기 등이 격렬하게 저항했으며 일본 함대가 철수함. 레이테만 해전의 주요 교전 가운데 하나.

1971년 10월 25일 유엔 총회가 결의 제2758호를 채택해 중화인민공화국 대표를 유엔에서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로 인정하고 장제스 정부 대표들을 축출하도록 결정. 결의는 중국의 유엔 대표권을 다루며 대만의 영토 주권에 관해 명시적으로 판정하지 않음.

1983년 10월 25일 미국과 일부 카리브해 국가의 병력이 그레나다에 상륙해 군사작전을 개시. 그레나다의 정변과 모리스 비숍 총리 피살 이후 이루어진 개입으로, 미국 정부의 개입 명분과 국제법적 정당성을 놓고 논쟁이 이어짐.

1415년 10월 25일 백년전쟁 중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이끄는 군대가 프랑스 아쟁쿠르 인근에서 프랑스군에 승리. 진흙탕 지형과 잉글랜드 장궁병의 운용 등이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영불 전쟁의 전개에 중요한 계기가 됨.

1950년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과 국군 사이에 온정리 일대에서 첫 주요 교전이 벌어지면서 중국군의 제1차 공세가 시작됨. 중국군 주력부대의 압록강 도하(10월 19일)와 실제 교전 개시를 구별해야 하며, 이후 한국전쟁 전세가 크게 변화함.

대법원이 10·26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김재규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함. 수사 중 가혹행위 등을 재심 사유로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결정이 확정돼 재심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됨. 이는 재심 절차의 개시 확정으로, 유무죄에 대한 재심 본안 판결과 구별해야 함.

10·26 사건

서울고등법원이 10·26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김재규의 내란목적살인 등 사건에 대해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함. 당시 수사 과정에 폭행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재심 사유로 인정한 결정으로, 원래의 형사판결을 곧바로 뒤집거나 행위의 역사적 성격을 확정한 판단은 아님.

10·26 사건

1979년 12월 20일 계엄보통군법회의가 김재규에게 내란목적살인·내란수괴미수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 박선호 등 범행에 가담한 중앙정보부 관계자들도 함께 중형을 선고받음. 거사의 성격을 '내란'으로 규정한 군사재판의 판단이 이후 평가 논쟁의 출발점.

10·26 사건

박정희 사망으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10월 27일 오전 4시를 기해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됨. 계엄사령관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합동수사본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취임. 유신 권력의 공백을 군부가 메우며 이후 신군부 집권의 통로가 된 조치.

10·26 사건

거사 직후 김재규가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향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동석하며 사태를 장악하려 했으나, 곧 범행이 드러나 10월 27일 새벽 보안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체포됨. 중앙정보부 병력을 동원하지 못한 이 판단 착오가 거사 실패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지목됨. 사건 수사를 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권력 전면에 부상하는 계기.

10·26 사건

부마민주항쟁 대응을 두고 강경 진압을 주장한 차지철 경호실장과 신중론을 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앞에서 충돌하며 권력 핵심부의 균열이 깊어진 국면. 차지철의 월권과 박정희의 신임 편중에 대한 김재규의 불만이 누적된 상황. 10·26 거사의 직접적 배경이자 동기로 거론되는 갈등 구도.

10·26 사건

1900년 10월 25일 고종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편하고 울릉도·죽도·석도를 관할구역으로 명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재가. 같은 해 10월 27일 관보에 실려 공포된 시점과 재가일을 구분해야 함.

대한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