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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5월 앤 설리번, 어머니와 함께 보스턴에 도착해 퍼킨스 학교를 방문했고, 그해 9월 정식 학생으로 등록해서 수업을 듣기 시작.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의 심리로 열린 윤석열과 명태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 재판에 김건희가 증인으로 출석, 부부가 같은 법정에서 대면. 김건희는 윤석열의 배우자인지를 묻는 질문에만 대답을 하고 나머지 모든 특검의 질문에는 증언 거부.
미국 사회당 가입 및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참여. 시각장애의 상당수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빈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 즉, 장애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믿음. 스승 앤 설리번의 남편이자 사회주의자인 존 메이시(John Macy)와 교류하며 사상적 깊이를 더함.
참고로 헬렌 켈러가 급진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FBI가 수십 년간 사찰.
영국·프랑스·벨기에 전시 실명자 구호 기금 설립
British, French, and Belgian Permanent Blind Relief War Fund 설립. 헬렌 켈러는 조지 케슬러, 코라 파슨스 케슬러와 함께 미국 지부를 구성하여 맹인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 이 단체는 후에 AFOB 로, 그 이후 헬렌 켈러 인터네셔널(Helen Keller International, HKI)로 이름 변경.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헌액. 헬렌 켈러는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20명의 여성 중 한 명.
미국 맹인 해외재단(AFOB) 국제관계 고문으로 임명되어 해외(글로벌) 장애인 인권 신장을 위해 국제 순방을 하며 활동.
린든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훈장 수상. 대통령은 그녀를 "모든 인류에게 용기의 본보기"라고 칭송.
미국시민자유연맹 설립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설립 과정에 도움을 줬으며 창립 멤버 65명 중 한 명이고, 초기 집행 위원회(national committee) 위원으로 활동.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에 가입하고 단순한 지지자를 넘어 워블리스(Wobblies)라고 불리는 열렬한 단원으로 활동, 급진적인 노동 운동에 투신. 헬렌 켈러는 장애의 근본 원인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빈곤에 있다고 믿었고, 포괄적이고 혁명적인 IWW의 이념에 공감.
앤 설리번 선생은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끊임없이 'W-A-T-E-R'라는 철자를 적어주며, 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을 느끼게 함. 헬렌 켈러는 이 일 이후로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고 말의 개념을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