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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매년 5월 1일에 기념하는 국제 노동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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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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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없음 6건
1923-05-01 event 한국 최초 메이데이(May Day) 행사 준비 사회주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연맹회’ 주최. 원래 계획은 서울의 각 노동단체와 공장노동자들이 당일 동맹파업을 결의하고 장충단에 모여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는 시위행진. 하지만 당시 조선총독부가 장충단으로 모여드는 노동자들을 잡아들여 행사가 열리지 못함. 대신 약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서울 중앙기독교 청년회관으로 장소를 옮겨 기념 강연을 듣는 것으로 대신함. 1946-05-01 event 해방 후 최초 노동절 기념행사 개최 좌익 노동단체인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약칭 전평)’에서 주관하는 노동절 기념행사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개최. 약 20만 여명의 노동자 참석. 전국에서 ‘8시간 노동제를 즉시 실천하라. 생활이 보장되는 최저 임금제를 실시하라. 실업자에게 직업을 달라. 공장 폐쇄 및 해고 절대 반대’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와 미군정은 좌익 단체의 노동운동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함. 1963-04-07 event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제정 박정희 정부에서 법률을 제정하여 3월 10일을 법정 유급휴일로 공식화 함. 5월 1일 노동절이 사회주의 국가나 좌익 진영의 기념일이라는 박정희 정부의 판단에 따름. "3월10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한다." 출처 11994-03-09 event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개정 김영삼 정부에서 법률을 개정,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변경.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 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한다." 출처 12025-11-11 event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 이재명 정부에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로 전부 개정되어, 62년 만에 5월 1일 명칭이 "노동절"로 변경. 2026년부터 적용.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를 반영하여 노동절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은 것으로 평가. 출처 12026-04-06 event 노동절 공휴일 지정 국무회의 의결 이재명 정부에서 노동절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 공포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 그동안 근로자의 날/노동절 제정 후 근로자는 유급휴일로 쉴 수 있었지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공무원, 교사 등에게는 휴일로 보장되지 않았음.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3건
1957-05-22 event 노동절 날짜 변경 지시 이승만 대통령이 5월 1일 국제노동절을 공산주의 선전과 연결하여 비판하고, 이와 구별되는 노동자의 기념일을 정하도록 지시함. 국가기록원에 소개된 시정명령은 반공주의가 노동자의 기념일과 노동운동을 재편하는 기준으로 작용한 사실을 보여 줌.
이 지시에 따라 대한노총은 1958년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단체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음. 1957년의 대통령 지시와 1958년 노동단체의 결정은 구별됨.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의 법제화는 이후 1963년에 이루어졌음.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이승만 출처 11958년 10월 event 대한노총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와 노동절 날짜 변경 대한노총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노동절을 5월 1일 대신 전신 조직의 결성일인 3월 10일로 정한 결정.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날짜 변경 지시를 뒤따른 조치이며, 1959년 3월 10일 기념행사로 이어진 변화.
1958년 10월 대회에서는 김기옥 중심의 지도체제도 성립. 노동절 변경 결정과 지도체제 개편이 함께 이루어진 대회. ‘근로자의 날’ 명칭의 법제화는 1963년, 법정 날짜의 5월 1일 변경은 1994년의 별도 사건.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출처 3 · 월1959-03-10 event 3월 10일 제1회 노동절 기념대회 개최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새로 정한 3월 10일 노동절의 첫 기념대회를 개최한 사건. 당시 대한뉴스는 경인지부 회원 약 2만 명의 참여와 선언문 낭독, 시가행진을 기록.
‘제1회’는 3월 10일로 날짜를 옮긴 뒤의 행사 차수를 뜻하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5월 1일에 열린 노동절 행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표현이 아님.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출처 2헤이마켓 사건 1건
1889-07 event 파리 국제 노동자대회, 5월 1일 공동행동 채택 파리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대회가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5월 1일 공동행동을 채택. 미국 노동시간 단축 운동과 헤이마켓 피고들의 기억이 국제 노동절의 형성 과정에 결합한 전환점. 헤이마켓 사건 출처 1 · 월갱신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