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 왕국, 일본 사쓰마번의 공격으로 항복
사쓰마 번의 군대가 가고시마항에서 출발해서 류큐 북부 아마미 오시마를 점령하고, 류큐 왕국 본섬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5월 8일 (음력 4월 5일) 압도적인 화력 앞에 쇼네이 왕이 항복 결정
사쓰마 번의 군대가 가고시마항에서 출발해서 류큐 북부 아마미 오시마를 점령하고, 류큐 왕국 본섬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5월 8일 (음력 4월 5일) 압도적인 화력 앞에 쇼네이 왕이 항복 결정
음력 4월 22일 류큐 왕국의 왕과 왕족이 포로로 압송
음력 9월 14일, 일본 메이지 정부가 류큐 왕국을 일방적으로 류큐 번(琉球藩)으로 전환하고 국왕 쇼 타이를 '번왕'으로 격하. 이 조치로 류큐는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행정구역으로 편입. 이후 10월까지 행정 절차 진행. 제1차 류큐 처분.
일본 내무대신 마쓰다 미치유키(松田道之)가 류큐에 파견되어 청나라 조공 금지, 외교권 박탈, 연호 사용 강제, 내무성 관할 등 강제 요구 사항 전달. 외국(청나라)과의 관계를 강제로 끊으며 실질적으로 주권 침탈.
일본 메이지 정부, 류큐 왕국에 폐번치현(廢藩置縣) 발표. 즉, 류큐번 폐지, 오키나와현 설치 칙서를 발표.
3월 25일 일본의 관료 마쓰다 미치유키가 600여 명의 군경을 거느리고 나하 항에 도착. 3월 27일 슈리성에 들어가 류큐 왕부의 나카진 왕자에게 폐번치현 통보하고 3월 31일까지 성을 비울 것을 명령.
쇼타이 왕, 일본 경찰과 군대가 지켜보는 와중 슈리성을 떠나 나하의 중성어전으로 거처를 옮김. 중성어전은 류큐 왕국의 왕세자가 거주하던 저택. 주권 찬탈의 상징적 사건.
일본 메이지 정부가 류큐 번을 폐지하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한다고 공식 선언. 제2차 류큐 처분.
쇼타이 왕은 도쿄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받음. 병을 핑계로 끝까지 이주를 늦추며 저항하려 했으나, 견디지 못하고, 나하 항을 통해 도쿄로 강제 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