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알프레드 노벨의 1895년 유언에 따라 마련되어 1901년부터 수여된 국제 평화상. 국가 사이의 우애 증진, 상비군의 폐지·감축, 평화회의의 개최와 확산에 기여한 활동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쟁 피해자 구호와 국제법, 민주주의·인권, 환경과 지속가능한 발전까지 평화의 조건을 폭넓게 다루어 온 노벨상의 한 부문.
노르웨이 의회가 선출한 5명으로 구성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결정하며, 개인과 단체 모두 수상 가능한 제도. 다른 노벨상 부문과 달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하며, 정기 시상일은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후보 추천과 실제 수상자 선정을 구분하고, 추천자·후보자 및 심사 자료에 50년 비공개 원칙을 적용함.
평화운동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진행 중인 화해와 인권 활동을 격려해 온 상으로, 일부 선정과 비수상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져 온 역사. 한국에서는 함석헌의 후보 추천과 2000년 김대중의 수상이 중요한 연결점이며, 2026년에는 국제법과 평화 증진에 기여한 나비 필레이가 수상자로 선정됨.
그 외 사실들 7건
트리비아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수상이나 위원회의 공식 지지를 뜻하지 않음. 자격을 갖춘 추천자가 이름과 이유를 제출하는 단계와, 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정하는 단계가 구별됨. 개인의 직접 지원은 심사 대상이 아니며, 언론에 소개된 '후보'라는 표현만으로 최종 심사 명단에 올랐다고 판단할 수 없음. 추천자와 후보자의 이름, 추천 내용과 심사 의견에는 50년 비공개 원칙이 적용됨.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와 노벨연구소는 이 기간의 후보 여부를 공식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으며, 추천자가 스스로 추천 사실을 공개하는 경우는 별개의 일. 당해 연도의 공식 후보 전체 명단이 공개되어 있다는 주장은 이 절차와 맞지 않음.
이미 수여된 노벨평화상을 취소하는 절차는 노벨의 유언이나 노벨재단 정관에 마련되어 있지 않음. 수상자의 이후 행동에 대한 비판이나 회수 요구가 생기더라도, 수상 당시의 결정이 자동으로 취소되는 구조는 아닌 제도.
환경·기후 문제도 평화상에서 다루는 의제. 2004년 왕가리 마타이의 수상에 이어, 2007년에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와 앨 고어가 인간이 일으키는 기후변화에 관한 지식을 확산하고 대응의 기반을 마련한 활동으로 공동 수상함. 물·토지 등 자원에 대한 압박과 대규모 이주가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관점에서 환경과 평화의 연결을 강조한 평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은 의회가 선출하지만, 수상자 선정은 위원회가 수행하는 구조. 정부와의 거리를 분명히 하기 위해 1936년 현직 정부 각료의 참여를 막고, 1977년 현직 국회의원을 새 위원으로 뽑지 않는 관행을 도입함. 현직 국회의원의 위원 자격 제한은 2017년 의회 결정으로 공식화됨.
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선정·시상하는 것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른 방식.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같은 군주 아래 있었던 점 등 여러 설명이 제시되지만, 노벨이 왜 평화상을 노르웨이에 맡겼는지 확정할 수 있는 설명은 남아 있지 않음.
논란
마하트마 간디는 1937·1938·1939·1947·1948년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으나 수상하지 못함. 1948년 암살 뒤 사후 수상 가능성도 검토되었지만 그해 평화상은 수상자 없이 남음. 당시 규정과 심사상의 판단이 얽힌 문제이므로, 오늘날의 사후 수상 제한만을 이유로 간디의 비수상을 단정하기 어려운 사례.
나치 독일의 재무장을 비판하다 수감된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에게 1935년분 노벨평화상이 1936년에 수여된 일은 큰 정치적 갈등을 낳음. 독일 당국은 병약한 그가 노르웨이로 가서 상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히틀러는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함. 수상자가 자국 정부의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반군사주의 활동을 평가한 사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