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유교 지식인과 유림 대표들이 파리강화회의를 향해 한국의 독립을 청원한 국제적 독립운동임. 곽종석과 김복한 등을 중심으로 영남·호서 유림이 결집해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작성하고 137명의 유림이 서명함. 김창숙은 이를 상하이로 반출한 뒤 파리에 있던 김규식에게 송달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 의사를 전달하고자 함.
3·1운동의 전개와 파리강화회의라는 국제 정세를 배경으로 전통 유림이 외교적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례임. 문안 작성과 서명 수합에는 지역과 학맥을 아우르는 유림의 인적망이 동원되었으며, 상하이에서는 파리장서를 한문본과 영문본으로 대량 인쇄해 각국 대표와 공사관에 발송하고 국내 향교에도 배포함. 이를 통해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유림의 독립 의사를 국내외에 알리고자 함.
이 운동은 유교계가 민족 독립운동의 주체로 조직적으로 결집하고 국제사회를 상대로 독립의 정당성을 제기한 중요한 사건임. 일제의 검거와 투옥으로 관련 인사들이 탄압받았으나, 전통 지식인층이 국제 정세를 인식하고 외교 활동과 국내 항일운동을 연결한 사례로서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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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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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2000 공백 104년
갱신 2026-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