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함 메인호, 쿠바 아바나 항 입항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독립 전쟁 중이었으며, 메인호(USS Maine)는 쿠바 내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파견.
쿠바의 독립 운동을 스페인이 탄압하고 미국의 메인호가 침몰하자, 미국은 이를 스페인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쿠바 문제를 핑계로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 압도적인 해군력을 앞세운 미국의 압승.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등을 미국에 넘기며 식민지 제국이 몰락했고, 미국은 새로운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 미국 제국주의 시작.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독립 전쟁 중이었으며, 메인호(USS Maine)는 쿠바 내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파견.
밤 9시 40분, 메인호가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 354명의 승조원 중 260여 명이 사망. 불안정한 폭약으로 인한 폭발로 추정되기도 했으나, 미국은 이를 스페인의 테러라고 단정.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쿠바 문제를 해결하고 스페인과 전쟁을 하기 위해 의회에 군사 개입 승인을 요청.
메인호 폭발 사건으로 미국 내 전쟁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동결의안이 상/하원에서 통과. 핵심 내용은 쿠바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임을 선언하고, 스페인에 쿠바에서의 주권 포기와 군대 철수를 요구하고, 매킨리 대통령에게 스페인을 상대로한 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
스페인이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하자, 매킨리 대통령은 즉시 미 해군에 쿠바 북부 해안 봉쇄를 명령.
조지 듀이George Dewey) 준장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마닐라만에서 스페인 함대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둠. 홍콩에 머물던 함대는 전쟁 선포 직후 필리핀으로 출항했고 밤을 틈타 마닐라만 방어선을 뚫고 진입. 미국은 현대식 철갑선이고 스페인은 오래된 목강선이었음.
전투 시작 당시 조지 듀이가 기함 올림피아호의 함장에게 내린 "준비되면 쏘게, 그리들리(You may fire when you are ready, Gridley)"라는 말은 미국 해군사의 명언으로 남음.
마닐라만 해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현지인들의 지지를 받지만 홍콩에서 망명 생활 중이던 필리핀 독립 운동 세력의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를 필리핀으로 불러들임. 미국 함정 맥컬록호를 타고 마닐라 카비테 항구로 입항.
참고로 당시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미국은 스페인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필리핀을 통치하려는 속셈이었음.
미국-스페인 전쟁 위해 미군 상륙.
이후 1903년 미국은 쿠바 제1공화국과 영구 조차 조약 체결, 현재까지 미국 해군 기지로 운영 중. 쿠바는 이 기지가 불법 점령지라며 반환율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묵살 중.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카비테의 자택 발코니에서 필리핀 독립을 선포하고 현재의 필리핀 국기를 처음으로 게양. 홍콩에서 제작해온 국기를 게양하면서 산프란시스코 데 말라본 마칭 밴드가 필리핀 국가를 연주, 독립 선언문은 암브로시오 리안자레스 바우티스타(Ambrosio Rianzares Bautista)가 낭독.
산후안 언덕 전투(Battle of San Juan Hill)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육군 대령과 그가 이끄는 의용 기병대인 러프 라이더스(Rough Riders)가 전설적인 활약을 펼친 것으로 유명. 이 승리로 미군은 산티아고 항구를 내려다보는 고지를 장악.
참고로 당시 전투에서 제9기병대, 제10기병대(버팔로 솔저) 같은 흑인 정규군 부대가 러프 라이더스보다 앞장서 싸웠고 피해도 심했으나 당시 미국 언론은 루즈벨트의 활약을 집중적으로 보도. 루즈벨트는 이 전투의 전공으로 명성을 얻어 뉴욕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됨.
산티아고 데 쿠바 해전(Battle of Santiago de Cuba). 산후안 언덕 전투 이후 산티아고 항구에 전박하던 스페인 함대가 육상과 해상 양쪽에서 포위될 위기에 처하고, 이를 벗어나려고 벌인 스페인 세르베라 제독이 미군의 주일 예배를 틈타 좁은 항구를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이를 기다리던 미국 해군이 추격하여 스페인 해군을 궤멸시킴. 스페인 측은 323여 명 사망, 151명 부상, 1800여 명 부상, 미국 측은 사망 1명, 부상 1명.
이 결과 스페인은 카리브해의 해상권을 잃고 쿠바에 주둔하던 스페인 육군은 보급이 끊김. 이 해전이 미국-스페인 전쟁의 실질적 종결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음.
오전 9시 산티아고 시장 광장에서 스페인의 토랄(Toral) 장군이 미국의 샤프터(Shafter) 장군에게 공식적으로 항복 선언. 산티아고 총독 관저에서 스페인 국기가 내려가고 미국 성조기가 게양. 산티아고 주변 2만4천여 명의 스페인군이 포로가 됨.
카리브해와 필리핀에서 스페인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미국이 푸에르토리코를 공격. 미군이 구아니카(Guánica)에 상륙하며 지상전 본격화.
미국과 스페인이 워싱턴 D.C.에서 미서전쟁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휴전 의전서(Protocol of Peace)에 서명. 적대 행위 중단, 스페인이 쿠바에 대한 모든 권리 포기, 푸에르토키코와 괌을 미국에 인도, 필리핀 마닐라와 항구 점령권은 미국이 보유하기로 협정.
스페인 총독 페르민 하우데네스와 미군 조지 듀이 제독은 스페인의 '명예로운 항복'을 위해 그리고 필리핀 독립운동 세력을 배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형식적인 전투를 치르기로 사전에 약속함. 두 군대는 필리핀 독립군이 마닐라 시내(인트라무로스)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이 단독으로 도시를 점령하는 시나리오를 짬. 오전 9시 경 미국 함대가 바다나 빈터에 함포 사격을 하고 스페인군은 짧은 저항 후 항복. 하지만, 가짜 전투를 계획했음에도 이 약속을 몰랐던 병사들끼리 실제 교전이 발생하여 미군 20여 명 미만, 스페인군 49여 명이 실제 사망.
필리핀 독립군은 스페인을 몰아내기 위해 미국과 협력했으나 미국은 필리핀 독립군에게 마닐라 시내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스페인군은 필리핀군이 아닌 미군에게만 항복함.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군은 필리핀 독립군이 자신들의 수도에 들어오는 것을 무력으로 막음. 실제로 미국은 마닐라를 점령한 후 필리핀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직접 군정을 실시.
1898 파리 조약 (The Treaty of Paris of 1898). 1898년 파리 조약은 미국-스페인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기 위해 체결된 강화 조약. 스페인은 쿠바에 대한 모든 주권을 포기했고, 푸에르토리코와 괌을 미국에 무상으로 할양함. 미국은 스페인에 2천만 달러를 지불하고 필리핀의 소유권을 넘겨 받음.
이 일로 미국이 본격적인 해외 식민지 보유국이 되며 미국 제국주의 시작을 알렸고, 스페인 제국은 마지막 주요 식민지를 잃으며 스페인 지국의 종말을 맞이함. 또한, 미국-필리핀 전쟁으로 이어짐.
미국-스페인 전쟁을 끝낸 파리 조약의 비준서가 교환되며 공식 발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