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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399년의 기록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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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년 10월 백제 근초고왕이 태자 근구수와 함께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함. 고구려 고국원왕은 전투 중 화살에 맞아 사망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됨.

국왕이 적의 공격으로 전사하면서 고구려는 대외전략의 위기에 놓였고 소수림왕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름. 백제가 4세기 후반 북방으로 세력을 확대하며 고구려와 경쟁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

372년(소수림왕 2) 전진의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고구려에 보내 불상과 경전을 전함. 소수림왕은 사절을 맞이하고 답례 사신을 보내는 등 외교적 교류를 이어감.

《삼국사기》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최초의 공식적인 불교 전래 기록이며, 왕실이 새로운 종교와 사상체계를 활용해 통치기반을 다지는 출발점. 실제 민간 신앙의 시작 시점과 국가적 수용 기록은 구분해야 함.

372년 소수림왕이 국가 교육기관 태학을 세워 자제들을 교육하도록 함. 태학은 문헌에 나타나는 한국 최초의 관학으로, 유교 경전과 행정에 필요한 학문을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됨.

고구려의 통치가 귀족세력의 연합을 넘어 관료와 제도를 중심으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의미를 지님. 학생 구성과 세부 교육과정은 확인된 사료가 제한적이므로 단정하지 않음.

373년(소수림왕 3) 고구려가 처음으로 율령을 반포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됨. 구체적 조문은 전하지 않지만 국왕을 중심으로 법질서와 국가운영 체계를 정비한 조치로 해석됨.

372년 불교 수용과 태학 설치에 이은 중앙집권화의 핵심 단계. 고구려의 법제 발전과 귀족세력의 통합, 왕권 강화 과정을 보여줌.

384년(침류왕 원년) 동진에서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도착하자 침류왕이 그를 맞아 궁중에 머물도록 하고 불교를 받아들임. 이듬해에는 불교 사원을 세우고 승려를 배출했다는 기록이 전함.

고구려의 372년 불교 수용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백제의 공식적 불교 전래 사건. 불교가 왕실과 중국 남조 간 문화·외교 교류를 매개했음을 보여줌.

396년 광개토대왕이 군대를 이끌고 백제의 도성을 공격하여 아신왕의 항복을 받았다고 광개토왕릉비 등에 기록됨. 비문에는 58성·700촌 확보라는 수치가 제시됨.

다만 58성·700촌은 그해 단일 원정만의 성과가 아니라 광개토왕 재위기 백제 전쟁의 누적 결과일 수 있다는 해석이 있으므로 구분함. 백제·고구려 관계의 주도권이 고구려로 넘어간 결정적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