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년 신라 진흥왕이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회복했던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하고 신주를 설치함. 551년 백제와 신라 등이 고구려를 압박하며 한강 유역에 진출했으나, 이후 동맹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함.
백제는 이를 동맹 위반으로 받아들였고 554년 관산성 전투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 신라의 한강 유역 지배와 중국 방면 외교·교역로 확대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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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년 신라 진흥왕이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회복했던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하고 신주를 설치함. 551년 백제와 신라 등이 고구려를 압박하며 한강 유역에 진출했으나, 이후 동맹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함.
백제는 이를 동맹 위반으로 받아들였고 554년 관산성 전투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 신라의 한강 유역 지배와 중국 방면 외교·교역로 확대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전환점.
554년 현재의 충북 옥천 일대 관산성 부근에서 백제와 신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짐. 백제 성왕은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한 신라에 맞섰으나 전투 중 신라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으며 백제군이 패배함.
백제와 신라의 외교 협력이 사실상 끝나고 적대관계가 깊어진 사건. 신라의 한강 유역 지배가 굳어지는 동시에 백제의 국력 회복 계획은 큰 타격을 입음. 전투의 구체적 경로와 참가세력에 대해서는 사료마다 차이가 존재함.
제59대 로마의 교황 교황 비질리오. (?~)
562년 신라 진흥왕이 이사부 등이 이끄는 군대를 보내 고령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를 공격해 정복함.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등에는 신라가 가야 지역을 병합한 사실이 전함.
532년 금관가야의 항복과는 30년의 시간차가 있으므로 가야 전체의 멸망을 한 사건으로 혼동하지 않아야 함. 대가야의 독자적 정치세력이 소멸하고 낙동강 유역 및 영남 내륙의 세력 재편이 진행된 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