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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7월 6일

12

한 번 기록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사임서를 제출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남. 정몽규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5월 29일 대표팀과 협회를 둘러싼 논란의 책임을 언급하며 대회 뒤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음. 2013년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취임 이후 이어진 약 13년 5개월의 재임 종료.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함. 배재고 야구부의 광주제일고 상대 경기 중 지역 비하성 응원 구호와 관련해 “5·18이 성역이 됐다”, “북한의 모습”이라고 주장한 뒤 논란이 확산. 청와대는 사안의 엄중성을 이유로 사퇴를 권고했으며, 이병태는 약 3개월간의 부위원장직을 마무리.

배재고 야구부 5·18 조롱 응원 논란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과 교직원·학부모 등이 광주제일고를 찾아 5·18민주화운동 비하 및 지역 비하성 응원 구호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 배재고 야구부 감독은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 방문단은 이후 학생독립운동기념탑 참배,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희생자들 추모.

https://www.youtube.com/watch?v=SrUBrq3UEJU

배재고 야구부 5·18 조롱 응원 논란

앤트로픽이 클로드 내부에서 보고·조절·추론에 관여하는 소수의 내부 표현 집합을 발견했다는 연구를 공개함. 연구진은 야코비안 렌즈 기법으로 이 표현들을 식별하고, 이를 J-space라고 명명함.

연구는 J-space가 모델의 출력에는 드러나지 않는 중간 추론, 평가 인식, 조작적 의도 등을 포착할 수 있으며, 전역 작업공간 이론의 기능적 성질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함. 다만 앤트로픽은 이 결과가 클로드의 주관적 의식이나 경험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힘.

앤트로픽 클로드

쿠팡 측 변호인단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이 제기한 집단소송과 관련해 미국 뉴욕 동부연방지방법원에 소송 기각 신청을 예고하는 사전 요청서 제출.

쿠팡 측은 개인정보 유출의 실질적 당사자가 한국 법인인 쿠팡 주식회사이므로 미국 모회사 쿠팡 Inc.와 김범석 의장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 사건의 증거와 증인이 대부분 한국에 있고 이용자들이 약관을 통해 한국법 적용에 동의했다는 점을 들어 미국이 아닌 한국 법원에서 재판해야 한다는 ‘불편한 법정지’ 원칙도 제시. 미국 법원의 판결이 한국에서 효력을 갖기 어렵다며 최소한 한국인 피해자 집단을 소송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

원고 측은 쿠팡 Inc.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에서 한국 법인을 핵심 영업 자회사로 소개하고 그룹 차원의 사이버보안 체계를 운영한다고 밝혀왔으며, 개인정보 유출 직후 미국 모회사 임원을 한국 법인의 임시 대표로 파견한 점을 들어 본사에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반박.

쿠팡 Inc.가 대외적으로 자신을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미국 기술기업으로 소개하고, 미국 정치권도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 쿠팡’을 차별한다고 압박해온 상황에서 미국 법정에서는 한국 자회사의 법적 독립성과 한국 관할을 강조하면서 책임과 규제에 따라 기업의 정체성을 선택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 촉발.

1999년 5월 17일 총리 직선제에서 노동당의 에후드 바라크에게 패배한 뒤, 바라크 정부가 출범한 7월 6일 총리직에서 퇴임함. 재임 기간 연립정부의 불안정, 평화협상과 영토 양보를 둘러싼 우파·중도층 내부의 갈등, 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불만이 패배의 배경으로 작용함. 이후 리쿠드 대표직에서도 물러나 정계를 잠시 떠났으며, 2002년 외무장관으로 복귀할 때까지 민간 부문에서 활동함.

1946 80년 전

삼의사 국민장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영결식이자 봉환식으로 광복 이후 한국에서 거행된 첫 국민장. 영결식은 서울운동장(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거행, 유해는 효창공원에 안장.

참고로 독립운동가 김승학 선생의 증손인 김병기가 당시 장례식의 장례 절차를 담고 있는 '삼의사 국민장 행사요령'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기증). (2015년 8월 10일) 함께 기증한 유물은 봉오동전투도, 순국의사명부초, 광복군 국내 제2지대장 위임장 등 50여 점.

하와이 왕국의 칼라카우아 왕은 미국·유럽계 기업인들의 지지를 받던 비밀 결사 ‘하와이 리그(Hawaiian League)’와 그 민병대인 ‘호놀룰루 라이플즈(Honolulu Rifles)’의 압박 속에서, 왕궁이 포위된 가운데 무력 위협 아래 헌법에 서명하게 됨. 이른바 ‘베요넷 헌법(Bayonet Constitution)’은 왕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내각과 입법부의 권한을 강화했으며, 재산 기준 투표제를 도입해 부유한 외국인에게 유리한 정치 구조를 만듬. 동시에 미국인과 유럽인의 참정권은 확대된 반면, 하와이 원주민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약화. 이로 인해 하와이 왕정은 형식만 남은 상태로 전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