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0 · 월·일 미상 milestone
광통교를 정릉 석물로 개축
조선 초기 흙다리였던 광통교가 홍수에 유실되자, 이전한 정릉의 옛터에 남은 석물을 이용하여 돌다리로 다시 조성한 사건. 신덕왕후의 왕릉에 쓰였던 조각 석재가 도성의 교통시설로 전용되어 왕실의 권력관계와 도시 건설이 하나의 유구에 겹쳐진 계기. 이후 왕의 행차와 사신의 왕래, 시전으로 오가는 통행을 감당하는 중심 교량으로 기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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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흙다리였던 광통교가 홍수에 유실되자, 이전한 정릉의 옛터에 남은 석물을 이용하여 돌다리로 다시 조성한 사건. 신덕왕후의 왕릉에 쓰였던 조각 석재가 도성의 교통시설로 전용되어 왕실의 권력관계와 도시 건설이 하나의 유구에 겹쳐진 계기. 이후 왕의 행차와 사신의 왕래, 시전으로 오가는 통행을 감당하는 중심 교량으로 기능함.
태종이 도성의 개천을 준설하는 공사를 음력 2월 15일 마무리함. 앞서 개거도감을 설치하고 지방의 인력을 동원하여 흙과 모래를 걷어내고 물길과 다리를 정비한 사업으로, 홍수를 막고 한양의 배수체계를 갖추려는 목적이었음.
공사에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었으며 실록에는 공사 중 사망한 64명의 집에 구휼하도록 명한 기록도 남아 있음. 도성 정비의 성과와 함께 국가의 치수사업을 떠받친 노동 부담을 보여 주는 사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