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흉작에 따른 재정난, 교내 갈등과 사고, 마적의 습격, 일제의 가중되는 탄압이 겹치며 신흥무관학교 폐교. 1911년 신흥강습소로 출발한 독립군 양성기관의 약 9년 운영 종료.
폐교 뒤 지청천은 사관생도 약 300명을 이끌고 안도현 삼림지대로 이동해 홍범도 부대와 연합.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력은 이후 여러 독립군 부대와 군정 조직에서 활동하며 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인적 기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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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흉작에 따른 재정난, 교내 갈등과 사고, 마적의 습격, 일제의 가중되는 탄압이 겹치며 신흥무관학교 폐교. 1911년 신흥강습소로 출발한 독립군 양성기관의 약 9년 운영 종료.
폐교 뒤 지청천은 사관생도 약 300명을 이끌고 안도현 삼림지대로 이동해 홍범도 부대와 연합.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력은 이후 여러 독립군 부대와 군정 조직에서 활동하며 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인적 기반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