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1923년 1월 3일 상하이에서 개막한 국민대표회의에 노령 한족 대표로 참석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독립운동 지도기관을 세우자는 창조파에 가담. 임시정부의 조직과 헌법을 유지하면서 개편하자는 개조파와 대립함.
개조파가 회의에서 이탈한 뒤 창조파는 6월 초 국민위원회와 국무위원회를 조직하고 국호를 조선공화국으로 정함. 원세훈과 김규식은 국무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창조파 인사들은 새로운 정부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같은 해 8월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 그러나 이 조직은 소련 정부와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이듬해 해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