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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창씨와 나」 발표하며 창씨개명 지지
이광수가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에 「창씨와 나」를 게재함.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함. 황민화운동과 내선일체를 선전한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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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가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에 「창씨와 나」를 게재함.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함. 황민화운동과 내선일체를 선전한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
제12사단장 안테로 스벤손 대령으로부터 스웨덴 사업가 에우겐 요한손이 기증한 명예 소총과 증서를 전달받음. 당시 핀란드군 사진 기록은 해위해가 자신의 소총으로 219명을 사살했다고 기록함.
1940년 2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해티 맥대니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매미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사건. 흑인 배우가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례로, 영화 산업의 인종 장벽을 넘어선 상징적 성취.
시상식 당시 인종분리 관행으로 맥대니얼이 다른 출연진과 떨어진 자리에서 참석해야 했다는 차별적 현실도 함께 보여주는 사건. 수상과 당시 할리우드의 인종차별 구조를 균형 있게 기록할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