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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타임라인 · 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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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부정선거와 마산의 항의 시위

1960-03-15 화요일 · 66년 전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이 정부통령 선거에 행정·경찰 조직을 동원해 대규모 부정을 저질렀음. 마산의 항의 시위와 경찰의 유혈진압은 4월혁명으로 이어짐.

추가 정보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제5대 부통령 선거가 실시됨.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의 사망으로 이승만의 당선이 사실상 확실해진 뒤에도, 자유당은 고령의 대통령을 승계할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부정선거 계획을 강행했음. 선거 준비에는 최인규 내무부장관을 비롯한 행정·경찰 조직과 자유당 기획기구가 관여했음.

투표함에 미리 표를 넣는 사전투표, 3인조·9인조 공개투표, 대리·무더기 투표, 야당 참관 방해와 폭력이 동원됨. 이는 일부 투표소의 우발적 위반을 넘어 국가기관과 여당 조직이 결합한 선거권 침해였음. 선거 당일 마산에서 부정을 규탄하는 학생·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했음.

정부와 경찰은 시위를 공산당의 선동으로 몰아가려 했음. 마산 경찰은 친공 구호를 적은 쪽지를 사망한 시위자들의 주머니에 넣는 증거조작까지 벌였으며, 관련 경찰들은 정권 붕괴 후 무고 혐의로 구속됨. 이승만도 4월 13일 담화에서 공산당 배후 혐의를 제기했음. 시위의 실제 원인이었던 부정선거와 경찰 발포에 대한 책임 추궁을 용공 혐의로 돌린 대응이었음. 다만 경찰의 구체적인 증거조작을 이승만이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님.

정부가 시위를 탄압하는 가운데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자 항의는 다시 확대됨.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은 이승만 정권의 책임을 묻는 전국적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음.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의 네 번째 당선을 확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4월혁명과 정권 붕괴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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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 202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