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아이힝거 출생
독일의 영화 제작자 베른트 아이힝거. (~2011년)
총 3102건
독일의 영화 제작자 베른트 아이힝거. (~2011년)
미국의 영화배우 라일 알자도. (~1992년)
유재흥 사령관은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주민들이 하산하여 귀순하면 모두 용서하겠다는 사면 정책을 발표. 실제로 많은 주민이 하산, 귀순.
약 한 달 보름만에 계엄령 해제. 이 계엄령은 법적 근거 없이 선포된 불법적인 조치였고,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나은 학살의 배경이 됨.
참고로 계엄법은 1949년 11월 24일 법률 제69호로 최초로 제정.
계엄령 포고 제1호로 교통제한, 우편통신·신문잡지 등 검열, 부락민 소개, 교육기관에 대한 제한, 처소벌채 급 도로의 수리보전 급 폭동에 관한 벌칙 등 7종목의 세칙 발표.
제주 4·3 사건 당시 군경의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을 정당화하려는 시도. 같은 해 11월 21일 제주도 전역 확대. 중산간 마을을 소각하여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초래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짐. 당시 일부 마을에는 소개령이 전달되지 않거나 전달되기 전 진압군이 들이닥쳐 집단학살을 당함.
그동안에도 분별없는 총살이 곳곳에서 벌어지긴 했지만 그 강도와 피해 규모 면에서, 그리고 전 지역에 걸쳐 동시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11월 중순 이후는 이전 기간과 뚜렷한 차이가 있음.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 주둔 14연대 군인 2,000여 명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한 사건. 김지회와 지창수 등 남로당 계열 군인들이 주도.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 만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진압 과정에서 전남 동부 지역의 민간인들이 대거 희생됨. 반란군에 의해 약 150명이 살해된 것에 비해 정부 측 진압 군경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은 약 2,500여 명에 달하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남겼음.
1948년 11월부터 5개월 동안 진행된 초토화 작전으로 진압군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함. 중산간 마을 134개가 모두 불에 탐. 제주 4.3 사건 희생자의 2/3인 9,700 여명이 초토화 작전으로 목숨을 잃음.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 포고령은 소개령으로 이어짐. 중산간 마을 주민들은 해변마을로 강제 이주.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장 및 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은 같은 해 8월 21~26일 열리는 해주 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 성산포항을 통해 탈출.
제헌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로 치뤄짐. 대통령 선거는 오전 10시, 부통령 선거는 오후 2시.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이시영이 부통령으로 당선.
전날 진급 축하연에 참석해 술을 마신 뒤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던 중 새벽에 총탄에 맞아 살해당함.
국회선거위원회에서는 북제주군 갑, 을의 투표가 원만히 시행되지 못하여, 군정장관에게 무효선포를 건의. 결국 무효 처리됨
영국의 음악가 브라이언 이노.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 국제연합임시위원단은 당시 접근할 수 없었던 북한지역의 선거를 유보한 채 남한지역만의 선거를 실시. 당시 4·3 사건의 여파로 제주도 내 3개 선거구 중 2곳(북제주 갑·을)에서 선거가 불가능해져 무효 처리. 국회의원 200석 중 198명 선출.
귀순선무작전을 펼친 조선국방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을 박진경 대령으로 교체. 진압 명령 태만과 조병옥 경무부장과의 갈등이 이유. 이후 제9연대는 제11연대로 개편(합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