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거리》,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상영
《비열한 거리》가 뉴욕 극장 개봉에 앞서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상영. 뉴욕의 이탈리아계 공동체와 소규모 범죄자들의 우정·신앙·폭력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제 소개와 이후 평단의 반응을 통해 스콜세지의 초기 대표작으로 자리 잡는 계기.
마틴 스콜세지와 마르딕 마틴이 공동 각본을 쓴 1973년 미국 범죄 드라마. 뉴욕 리틀이탈리의 소규모 범죄자들을 통해 가톨릭적 죄의식과 구원, 우정과 폭력, 이탈리아계 미국인 공동체의 삶을 그린 작품. 하비 카이텔이 찰리, 로버트 드 니로가 조니 보이 역을 맡았으며 스콜세지와 드 니로의 첫 장편 협업.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대중음악과 유동적인 카메라, 불안정한 인물 관계에 결합한 초기 대표작으로, 1997년 미국 국립영화등기부 보존작에 선정.
마틴 스코세지와 NYU 동료 마르딕 마틴이 1966년 초기 아웃라인을 작성한 뒤 약 7년에 걸쳐 각본을 발전시킨 작품. 스코세지가 성장한 뉴욕 리틀 이털리의 인물과 생활환경을 바탕으로 거대 범죄조직의 권력자보다 동네의 소규모 범죄자와 주변 인물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춤. 《Boxcar Bertha》 이후 존 카사베츠가 스코세지에게 다시 개인적인 영화 작업으로 돌아갈 것을 권한 것도 제작 재개의 중요한 계기가 됨.
여러 차례 투자 유치에 실패한 뒤 독립적으로 제작됨. 촬영은 1972년 11월 중순부터 1973년 1월 중순까지 약 27일 동안 진행됐으며, 뉴욕 촬영은 약 7~8일에 그치고 상당 부분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함. 완성 뒤 워너 브라더스가 배급을 맡음.
전통적인 관현악 영화음악 대신 기존 록·팝 녹음곡을 인물의 등장과 감정, 편집 리듬에 적극 결합함. 배우들의 즉흥연기를 녹음한 뒤 일부를 각본에 다시 반영하는 방식도 사용함. 가톨릭적 죄의식과 구원, 남성 집단의 우정과 폭력, 뉴욕의 도시 공간, 대중음악을 통한 감정 표현 등 이후 스코세지 영화에서 반복되는 요소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됨.
1973년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로버트 드 니로는 조니 보이 역으로 주요 비평가상을 수상함. 1974년 칸 감독주간에서 국제 관객에게 소개됐고, 1997년 미국 국립영화등기부 보존작으로 선정됨. 1998년 25주년 극장 재개봉을 거쳤으며, 2023년에는 마틴 스코세지와 셀마 스쿤메이커가 승인한 4K 디지털 복원판이 공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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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가 뉴욕 극장 개봉에 앞서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상영. 뉴욕의 이탈리아계 공동체와 소규모 범죄자들의 우정·신앙·폭력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제 소개와 이후 평단의 반응을 통해 스콜세지의 초기 대표작으로 자리 잡는 계기.
로버트 드 니로가 《비열한 거리》의 조니 보이 역으로 전미비평가협회 남우조연상 수상. 1973년 개봉작을 대상으로 한 협회의 선정 결과로, 드 니로의 초기 영화 연기에 대한 주요 평단의 인정.
《비열한 거리》가 1974년 칸 감독주간에서 상영됨.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처음 칸을 방문함. 공식 경쟁부문 수상이나 작품의 최초 개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 병행 행사인 감독주간의 초청 상영이었음.
미국 의회도서관이 문화적·역사적·미학적으로 중요한 영화 25편의 국립영화등기부 선정을 발표함.
《위대한 독재자》(1940)와 《비열한 거리》(1973)를 비롯한 작품들이 미국 영화유산의 보존 목록에 추가되었으며, 누적 선정작은 225편에 이르렀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가 뉴욕에서 극장 개봉. 같은 달 2일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되었으며, 26일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개봉.
로버트 드 니로가 빚을 갚지 않는 조니 보이 역으로 하비 카이텔과 호흡을 맞춘 작품. 드 니로와 스콜세지의 첫 장편 협업으로, 뉴욕 리틀이탈리의 소규모 범죄 집단과 가톨릭 신앙의 갈등을 함께 그린 이야기.
하비 카이텔이 가톨릭 신앙과 범죄 세계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며 친구 조니 보이의 빚 문제에 휘말리는 찰리 역으로 출연.
《비열한 거리》가 개봉 25주년을 맞아 극장에서 재개봉함.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이 《비열한 거리》의 새로운 4K 디지털 복원판을 출시. 35mm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를 바탕으로 복원했으며 마틴 스콜세지와 셀마 스쿤메이커가 복원 마스터를 승인. 극장 개봉 50주년을 맞은 작품을 새로운 영상·음향 마스터로 다시 소개한 홈비디오 판본.
마틴 스콜세지와 마르딕 마틴이 훗날 《비열한 거리》가 되는 작품의 초기 아웃라인을 작성. 뉴욕 리틀이탈리에서 성장한 경험과 친구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약 7년 동안 각본을 발전시킨 작업. 《공황시대》 이후 존 카사베츠의 조언을 계기로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영화로 돌아가려던 스콜세지의 방향과 맞물린 기획.
《비열한 거리》가 약 27일의 제작 일정으로 촬영. 뉴욕 현지 촬영은 약 7~8일에 그쳤고, 제작비를 절약하기 위해 상당 부분을 로스앤젤레스의 세트와 실제 공간에서 촬영해 리틀이탈리의 거리와 실내로 재현. 동네 사람들과 뉴욕대학교 동료들의 협력이 저예산 제작을 뒷받침한 작품.
초기 작업 제목은 도노반의 노래에서 따온 《Season of the Witch》였음. 최종 제목 Mean Streets는 작가 제이 콕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 「The Simple Art of Murder」에서 착안해 제안한 것으로 전해짐.
전통적인 영화음악 대신 로네츠의 〈Be My Baby〉, 롤링 스톤스 등의 기존 록·팝 음악을 인물의 등장과 감정, 장면의 편집 리듬에 결합함. BFI는 당시 이러한 빈티지 대중음악 사용이 흔치 않은 방식이었다고 평가함.
마틴 스콜세지가 배우들의 리허설 즉흥연기를 녹음하고 전사해 각본에 반영. 《비열한 거리》에서 조니 보이가 빚을 갚지 못하는 이유를 찰리에게 늘어놓는 장면도 로버트 드 니로와 하비 카이텔의 즉흥연기에서 나온 대화.
약 27일의 제작 일정 가운데 뉴욕 촬영은 약 7~8일에 불과했고 상당 부분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함. 당시 일부 평론가가 전편을 뉴욕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공간을 재현함.
로저 코먼이 작품을 흑인 관객을 겨냥한 영화로 다시 쓰는 조건으로 제작비 지원을 제안했으나 스코세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음. 이후 조너선 탭린 등을 통해 독립 제작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함.
《Boxcar Bertha》를 완성한 뒤 존 카사베츠가 스코세지에게 다시 자신의 경험에 가까운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 것을 권함. 스코세지가 오랫동안 제작자를 찾지 못했던 《비열한 거리》 프로젝트로 돌아가는 계기의 하나가 됨.
1973년 11월 Variety 보도에 따르면 미국 인종평등회의(CORE)가 흑인 등장인물의 묘사를 문제 삼아 작품을 100점 만점에 25점으로 평가함. AFI는 이를 CORE가 흑인 관점의 기준으로 영화에 점수를 매긴 초기 사례로 기록함.
《비열한 거리》가 마틴 스코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가 처음 함께 작업한 장편영화가 됨. 이후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등 장기간 협업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