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방송국, 라디오 정규방송 개시
일제강점기 서울 정동의 경성방송국이 호출부호 JODK로 정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함. 방송망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KBS의 역사와 이어지지만, 당시에는 조선총독부의 통제 아래 운영된 식민지 방송이었음. 한국어와 일본어 방송을 거쳐 방송망이 확대되었으며, 한국어 프로그램도 검열과 식민 통치의 제약을 받음. 해방 뒤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편되면서 방송의 운영 주체와 제도가 바뀌는 출발점이 됨.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사이자 국가기간방송으로, 텔레비전·라디오·국제방송과 디지털 서비스를 운영하는 한국방송공사. 1927년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방송에서 이어지는 방송망을 바탕으로 해방 이후 국영방송을 거쳐 1973년 공사 체제로 출범함. 전국 방송망과 해외 서비스를 통해 보도·교양·드라마·예능·문화·재난방송을 제공하며, 이산가족 찾기 방송과 방송기술 전환 등 한국 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기록해 옴. 수신료와 광고 등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으로서 보편적 서비스와 공적 책임을 수행하는 한편, 정치적 독립성·보도 공정성·경영진 선임·재원 구조를 둘러싼 논쟁과 개혁 요구가 지속되어 온 기관.
일제강점기 서울 정동의 경성방송국이 호출부호 JODK로 정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함. 방송망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KBS의 역사와 이어지지만, 당시에는 조선총독부의 통제 아래 운영된 식민지 방송이었음. 한국어와 일본어 방송을 거쳐 방송망이 확대되었으며, 한국어 프로그램도 검열과 식민 통치의 제약을 받음. 해방 뒤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편되면서 방송의 운영 주체와 제도가 바뀌는 출발점이 됨.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방송 업무가 공보처로 이관되어 국영방송 체제로 전환됨. 해방 뒤 미군정에 접수되어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편되었던 방송 조직이 새 정부의 행정체계에 편입된 것임.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방송시설 상당수가 파괴되고 서울중앙방송국도 부산으로 피난하는 어려움을 겪음. 이후 시설 복구와 방송망 확대를 거쳐 국영방송 체제가 유지되다가 1973년 공사화로 이어짐.
국영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이 개국하여 KBS의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됨.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 자체는 1956년 HLKZ에서 시작되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화재 등으로 중단된 뒤 국영방송이 본격적인 TV 시대를 열게 됨. 라디오 중심이던 방송에 영상 매체가 더해지면서 뉴스·교양·오락을 전달하는 방식이 확대됨. 이후 민영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잇따라 개국하고 수상기 보급이 늘면서 방송 경쟁과 대중문화의 변화가 가속됨.
한국방송공사법에 따라 한국방송공사가 창립하여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 체제로 전환됨. 문화공보부 소속 중앙방송국과 16개 지방방송국이 공사 체제에 편입된 것으로,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방송 운영의 법적·조직적 형태가 달라짐. 창립 당시에는 텔레비전 1개 채널과 라디오 4개 채널을 운영함. 공사화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제도화하려는 전환이었으며, 이후 방송의 독립성과 공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의 기준점이 됨.
KBS가 수출의 날 기념식을 컬러로 중계하며 텔레비전 컬러방송을 시작함. 국내 전자업체들은 이미 컬러 수상기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국내 판매와 방송은 별도의 정책적 허용을 기다려야 했음. 1980년 8월 국내 시판 허용과 11월 정부의 방송 개시 결정이 이어지면서 흑백 중심의 시청 환경이 바뀌기 시작함. 컬러 프로그램의 확대는 영상 제작과 수상기 수요를 함께 변화시켰으며, 같은 시기 언론통폐합에 따른 채널 재편과는 구분되는 기술적 전환이었음.
KBS가 전쟁과 분단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사연을 연결하는 특별생방송을 시작함. 첫 방송 이후 신청과 문의가 몰리면서 단발성 기획은 장기간의 생방송으로 확대되었고, 여의도와 방송국 주변에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모임. 방송은 11월 14일까지 138일 동안 이어졌으며 누적 방송시간은 453시간 45분에 달함. 이름과 고향, 헤어진 경위 같은 단서를 전국 시청자와 공유하여 많은 가족의 상봉을 도왔고, 분단의 상처를 개인의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냄.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방송 테이프와 신청서 등은 훗날 세계기록유산으로 보존되는 계기가 됨.
서영훈 사장 퇴진 이후 서기원 사장 선임에 반발하던 KBS 노동조합의 출근 저지 과정에서 경찰이 사내에 투입됨. 4월 12일 노조원 연행에 이어 13일 비상사원총회가 송출 부문을 제외한 방송 제작 거부를 결의하면서 갈등이 확대됨. 노조는 사장 퇴진과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으나, 서기원은 사장직 유지와 제작 복귀 입장을 고수함. 추가 경찰 투입과 연행, MBC 노조의 연대 제작 거부가 이어졌으며 KBS 노조는 5월 17일 제작 복귀를 선언함. 해직자 발생과 함께 마무리된 이 사건은 민주화 이후에도 공영방송의 인사·편집 독립성이 정치권력과 충돌할 수 있음을 드러낸 사례가 됨.
텔레비전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걷는 한국전력 위탁징수 방식이 도입되고 KBS 1TV 광고방송이 폐지됨. 정부는 징수율을 높여 공영방송 재원을 안정시키고 광고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취지를 제시함. 월 수신료는 2,500원으로 유지되었으며 저소득층과 난시청 지역 등에 대한 면제 조치도 함께 추진됨. 안정적인 공적 재원과 비상업적 채널 운영을 연결한 제도였지만, 이후 수신료 징수 방식과 방송의 공정성·책무성은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됨.
KBS가 해외 동포를 대상으로 24시간 운영하는 국제위성방송 KBS WORLD를 개국함. 출범 당시에는 KBS 국내 채널의 주요 프로그램을 재편성하여 한국어로 제공하는 방식이었음. 해외 시청자는 현지 방송사 등을 통해 수신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국내 프로그램이 국경을 넘어 지속적으로 유통되는 창구가 마련됨. 이후 해외 시청자층과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재외동포 연결뿐 아니라 드라마·음악 등 한국 문화의 국제적 확산을 담당하는 채널로 성장함.
수도권의 지상파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이 새벽 4시에 종료되면서 전국의 디지털 전환이 마무리됨.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디지털 방송을 병행해 왔으며, 지역별 순차 종료를 통해 전환을 진행함. 이 과정에는 전송방식 선정 논쟁과 특별법 제정, 송신시설 전환이 함께 수반됨. 기존 아날로그 수상기를 사용하는 가구가 방송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컨버터·안테나 등 수신 지원도 이루어짐. 화질 개선만이 아니라 시청자의 수신 환경과 방송 인프라 전체를 바꾼 전환이었음.
1983년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 대상에는 방송 영상뿐 아니라 제작진 업무수첩, 출연 신청서와 방송 진행 자료, 음반·사진 등이 포함됨. 유네스코 등록 설명은 463개 비디오테이프를 비롯한 20,522건의 기록을 제시함. 방송 당시의 상봉 장면과 시민들의 절박한 참여가 전쟁·분단의 영향을 보여 주는 기록으로 국제적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것임.
KBS·MBC·SBS가 새벽 5시부터 수도권에서 지상파 UHD 본방송을 시작함. HD보다 높은 해상도와 향상된 음향을 제공하는 방송으로, 디지털 TV 도입 이후 새로운 기술 전환이 추진된 것임. 직접 수신에는 해당 전송방식을 지원하는 수상기와 안테나 등이 필요해 시청 환경의 준비가 중요한 과제로 남음. 방송사들은 UHD 콘텐츠 비중과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는 계획을 제시했으며, 기술의 도입과 보편적 이용 가능성 사이의 간격도 함께 드러남.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MBC본부가 경영진 퇴진과 공영방송 개혁을 요구하며 동시 총파업에 들어감. 두 방송사 노조가 함께 파업한 것은 2012년 이후 5년 만으로, KBS본부는 고대영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주요 요구로 내세움. 파업으로 KBS의 여러 뉴스와 프로그램이 결방되거나 축소 편성되면서 시청자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침. KBS본부의 파업은 해를 넘겨 142일간 이어졌고, 고대영 사장 해임 후 2018년 1월 24일 업무에 복귀함. 복귀 이후에는 취재·제작 자율성, 조직 개혁과 프로그램 경쟁력 회복이 노조의 후속 과제로 제시됨.
KBS 2TV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1,050회 방송을 끝으로 장기 휴식에 들어감. 1999년 시작된 프로그램은 여러 코너와 신인 코미디언을 배출하며 지상파 공개 코미디의 대표 무대로 자리 잡았음. 마지막 방송에는 선후배 출연자들이 함께해 기존 코너를 되돌아보았고, 이태선 밴드의 연주 등으로 작별을 전함. 방송 중단은 당시 종영으로도 보도되었으나 영구 폐지로 확정된 채 끝난 것은 아니며, 프로그램은 2023년 11월 12일 새 방송으로 돌아옴.
텔레비전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하여 고지·징수하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시행됨. 정부는 납부자가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구분하고 잘못된 부과에 대응하기 쉽게 하겠다는 취지를 설명함. 고지서와 수납체계 개편이 필요해 시행 즉시 모든 청구가 별도 고지서로 바뀐 것은 아니며 과도기 분리납부 절차가 마련됨. KBS는 공영방송의 재정 안정성과 방송의 자유가 훼손될 수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함. 징수 방식 변경은 납부 편의 문제와 공영방송 재원 보장 문제가 충돌하는 쟁점으로 이어짐.
헌법재판소가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에 대한 KBS의 헌법소원을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기각함. 다수의견은 납부통지 방식의 변경만으로 방송 운영의 자유나 공영방송의 기능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함. 입법예고 기간 단축 등에 관한 청구는 권리보호이익 문제로 각하됨. KBS가 제기한 재정 안정성과 독립성 문제에 대해 다수와 소수의 판단이 갈렸으며, 합헌 결정 이후에도 실제 징수 비용과 재원 감소에 관한 논쟁은 이어짐.
개정 방송법 시행으로 텔레비전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통합징수가 재개됨. 2023년 시행령 개정으로 도입된 분리징수 방식이 입법을 통해 다시 바뀐 것으로, 2025년 4월 법 개정 후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침. KBS는 재원 안정화를 바탕으로 대하드라마와 공익 콘텐츠 등 공공성 강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함. 통합징수 복귀는 재원 확보 방식의 변화였으며, 확보된 재원을 어떻게 공적 서비스와 시청자 신뢰 회복으로 연결할지가 후속 과제로 남음.
시민 205명으로 구성된 KBS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후보자 평가를 거쳐 김영삼·엄경철·이태현을 최종 면접 대상자로 추천함. 공모 지원자 28명 가운데 서류·중간 면접을 통과한 5명이 경영계획 발표와 질의응답에 참여함. 추천위원들은 숙의토론을 통해 질문을 마련하고 공정성·독립성, 미래 비전, 재원 안정화, 책임성 등을 평가함. 시민 평가 결과가 이사회의 최종 사장 후보 심사로 이어지는 절차였으며, 국민추천위의 추천은 사장 임명 자체와는 구분되는 단계임.
CBS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뉴스·보도 방송을 중단함. 같은 달 30일에는 상업광고도 중단되었으며, 선교 중심의 편성으로 방송 범위가 제한되고 일부 방송 인력이 KBS로 전출됨.
동아방송이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KBS에 흡수됨. 동아일보는 앞서 지면으로 방송 종료를 알렸으며, 청취자가 접하던 민영 라디오의 목소리는 강제적인 방송 재편 속에서 사라졌음. 같은 날 동양방송도 폐국하여 신문사가 방송을 함께 운영하던 체제가 해체되었음.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양방송이 서울 본사와 부산지국의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을 종료하고 한국방송공사에 흡수 통합됨. 개국 16년여 만의 폐국으로, 당일 TV와 라디오에서 고별방송이 진행됨.
라디오에서는 황인용이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마지막 TBC 방송을 진행함. 그는 종료 시각이 다가오자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울먹였고 마지막 호출부호를 알린 뒤 방송을 마쳐, 언론통폐합과 TBC 폐국을 상징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로 회고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