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성방직·동아일보·보성전문학교의 경영과 운영에 참여한 기업인·언론인·교육자이자 광복 후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에서 활동하고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정치인. 중앙학교 인수,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주도, 보성전문학교 인수 등을 통해 교육·언론·산업 분야에서 활동함. 중일전쟁 이후 전시동원에 협력한 일부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에서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되었으며,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은 2018년 취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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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는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교육·산업·언론 사업에 참여함.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해 운영하고, 1919년 경성방직 설립에 참여했으며, 1920년 동아일보 설립을 주도하고 사장을 지냄. 1929년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설립하고 1932년 재정난에 놓인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교장을 맡으며 교육사업을 확대함.
중일전쟁 이후에는 경성방송국 시국강좌, 국방헌금, 국민정신총동원·국민총력 조직과 조선임전보국단 참여, 학도지원병과 징병 참여를 독려한 글과 활동 등이 확인됨.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 가운데 일부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으며, 후손과 인촌기념회는 관련 자료의 신빙성과 일제의 강제성 등을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함. 2017년 대법원은 흥아보국단 준비위원 관련 부분 등 일부를 제외하고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을 유지한 원심을 확정함.
광복 뒤에는 미군정 한국인 고문단 의장, 한국민주당 지도부를 거쳐 민주국민당 창당을 주도함. 1951년 국회에서 제2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1952년 부산정치파동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를 비판하며 부통령직을 사임함. 1955년 사망한 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추서되었으나 2018년 정부가 이를 취소했고, 2024년 대법원은 서훈 취소가 적법하다고 최종 판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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