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례문
서울 경복궁에서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자리한 중문이자 외전으로 들어가는 문. 궁궐 중심축을 따라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안쪽의 영제교·금천과 주변 행각이 함께 이루는 의례 공간의 입구. 정면 3칸·측면 2칸의 중층 목조 문루에 다포 공포와 우진각지붕을 갖춘 건축물.
1395년 경복궁 창건 때 세워진 문에서 비롯되어, 1426년 세종 때 홍례문(弘禮門)이라는 이름을 얻은 유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고종 때 경복궁 중건과 함께 다시 세워졌으며, 이 과정에서 현재의 흥례문(興禮門)으로 이름 변경.
일제강점기 조선물산공진회 준비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 과정에서 문과 행각·금천 주변이 훼철된 공간. 문이 사라진 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궁궐 중심부의 경관과 공간 질서도 크게 변형됨. 총독부 청사 철거 뒤 진행된 복원사업으로 흥례문·행각·유화문·기별청·영제교 등이 제자리를 되찾고, 2001년 10월 26일 낙성식을 거행함.
현재의 흥례문은 조선시대 목조 건물 자체가 그대로 남은 것이 아니라 문헌과 옛 모습에 관한 자료를 토대로 복원한 건물. 광화문에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궁궐의 공간 질서를 회복한 사례이자, 식민지기의 훼손과 현대 문화유산 복원의 역사를 함께 보여 주는 장소.
그 외 사실들 4건
트리비아
흥례문의 옛 이름 홍례문에서 ‘홍(弘)’을 ‘흥(興)’으로 바꾼 까닭은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 홍력(弘歷)을 피하기 위한 피휘. 고종 대 중건 과정에서 영건도감이 건의하여 채택한 명칭.
흥례문은 근정문과 규모·양식이 같다고 기록된 문. 2001년 복원에서는 《궁궐지》 등의 기록과 현존하는 근정문을 건축 형태를 되살리는 근거로 활용함.
영제교의 석재는 일제강점기 해체 후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가 복원에 사용된 부재. 1950년대 수정전 앞과 1970년대 건춘문 안쪽을 거쳐 2001년 흥례문 안 원래 자리로 복귀.
흥례문 안마당은 근정전 의례 참석자들이 대기하고 조참에 참여하던 공간. 문관은 동쪽, 종실과 무관은 서쪽에 자리하고, 품계에 따라 금천의 남북을 달리 사용한 배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