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건과 함께 흥례문 전신 건립
1395년 경복궁 창건 당시 정전 남쪽에 오문 3칸과 행랑, 뜰의 석교가 마련됨. 흥례문으로 이어지는 문의 기원에 해당하며, 당시의 배치는 《태조실록》에 기록됨.
서울 북악산 아래에 자리한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왕의 공식 의례와 정치 활동의 중심 궁궐임. 광화문에서 흥례문과 근정전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을 바탕으로 정무·의례·생활 공간을 배치함.
1395년 창건된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고종 대에 중건됨. 일제강점기에는 전각 철거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으로 크게 훼손됨.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정비를 진행하여 궁궐의 주요 건물과 공간을 회복해 온 한국의 대표적 역사유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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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 경복궁 창건 당시 정전 남쪽에 오문 3칸과 행랑, 뜰의 석교가 마련됨. 흥례문으로 이어지는 문의 기원에 해당하며, 당시의 배치는 《태조실록》에 기록됨.
세종이 집현전 수찬에게 경복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도록 하여 근정전 앞 둘째 문을 홍례문, 셋째 문을 광화문으로 명명함. 근정문 앞 석교에도 영제라는 이름을 부여함.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면서 궁성의 정문인 광화문과 그 안쪽 중문인 홍례문도 소실됨. 궁궐의 남쪽 출입·의례 공간이 함께 훼손된 사건으로, 이후 약 270년 동안 본격적인 중건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고종 대에 복구됨.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오랫동안 복구되지 못했던 경복궁의 중건을 시작함. 1867년 주요 건물을 다시 세우는 대규모 궁궐 재건의 출발점임.
《경복궁 영건일기》에 고종 대 중건공사 중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은 사실을 기록함. 다듬은 돌로 기단과 계단을 만들고 내부를 흙으로 채운 구조로, 문 앞에 왕실 의례와 행차를 위한 넓은 공간을 조성한 과정임. 이 월대는 일제강점기의 전차선로 설치와 도로화로 훼손되었다가 2023년 발굴·복원의 대상이 됨.
1865년 시작한 고종 대 경복궁 중건을 통해 1867년 주요 전각과 출입 공간의 재건을 마무리함. 광화문은 궁성과 함께 이른 시기에 공사를 진행하여 1865년 상량하였으며, 그 앞에 월대를 조성함.
안쪽의 흥례문과 주변 행각도 다시 세워 금천과 영제교를 품은 마당을 구성하고, 광화문에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의례 동선을 회복함. 이 중건 과정에서 중문의 이름을 홍례문에서 흥례문으로 바꿈.
고종 10년 경복궁 안에 건청궁을 지음.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물던 별도의 거처로, 기존 궁궐 북쪽에 새로운 생활 공간을 마련한 변화임.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공사관원·낭인 등이 경복궁을 습격해 명성황후를 시해함. 삼국간섭 이후 조선 조정에서 친러 세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영향력 회복을 꾀하며 자행한 사건으로, 이후 을미의병과 아관파천으로 이어지는 정세 변화의 중요한 배경이 됨.
1915년 9~10월 경복궁에서 식민 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함. 행사 준비 과정에서 흥례문 권역 등 궁궐 건물들을 해체하여 전시 공간으로 전용한 사건. 흥례문 권역의 훼철은 1916년 이후 같은 자리에 진행된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과 구분되는 과정.
일제가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면서 광화문을 원래 자리에서 해체하고 동쪽 궁성의 건춘문 북쪽으로 옮김. 1926년 해체와 이듬해 이건으로 이어진 과정으로, 광화문은 궁궐 중심축의 정문이라는 본래 위치를 잃게 됨. 주변 전차선로와 도로의 확장은 월대와 궁장 등 남쪽 경관의 훼손에도 영향을 줌.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져 있던 광화문이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피해를 입어 상부 목조 문루가 불타고 석축만 남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훼손에 이어 전쟁으로 다시 궁문의 모습을 잃은 사건. 남은 석축과 과거 도면·사진은 이후 복원의 바탕이 됨.
한국전쟁 때 불탄 광화문의 문루를 철근콘크리트로 재건하고 경복궁 남쪽에서 준공식을 거행함.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설치하여 도심의 정문 경관을 되살림.
다만 배치 기준을 옛 조선총독부 청사에 맞추면서 고종 대 위치와 근정전 중심축에서 어긋났으며, 전통 목조 구조도 회복하지 못함. 이 차이를 바로잡는 것이 2006년 시작한 재복원사업의 핵심 과제가 됨.
훼손된 경복궁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1차 복원정비사업을 시작함. 침전과 동궁, 흥례문, 광화문 등 주요 권역을 단계적으로 복원하는 사업으로 2010년까지 이어짐.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부터 철거를 시작함. 흥례문 권역을 차지하던 청사를 해체하여 궁궐 중심부의 전통 건축과 공간을 복원하기 위한 기반 마련.
경복궁 복원정비 제3단계인 흥례문 권역 복원사업을 시작함. 흥례문과 주변 행각·유화문·기별청, 영제교와 어구를 함께 복원하는 사업으로 2001년까지 추진됨.
2001년 10월 26일 흥례문 권역 복원을 마무리하고 낙성식을 거행함. 흥례문과 주변 행각·유화문·기별청 등 건물 6동 및 영제교·어구를 복원하여 광화문에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궁궐 중심 공간을 회복한 사업.
조선물산공진회 준비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 과정에서 훼손된 권역을 총독부 건물 철거 후 다시 조성한 결과.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제3단계 완공을 알리는 이정표.
문화재청이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을 열고 해체·복원에 착수함. 1968년 세운 철근콘크리트 문루를 해체하고 고종 대의 위치와 목조 건축 형식을 되찾는 사업임. 이후 발굴조사와 석축·문루 공사를 거쳐 2010년 공개로 이어짐.
고종 대의 위치와 목조 형식을 되살린 광화문을 광복절에 공개하고 현판 제막식을 거행함. 2006년 12월부터 진행한 복원으로 철근콘크리트 문루를 목조로 바꾸고,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추어 문의 위치를 바로잡음.
임태영의 옛 글씨를 바탕으로 제작한 한자 현판을 걸었으며, 용성문·협생문·수문장청 등 주변 건물과 흥례문으로 이어지는 어도도 함께 공개함. 당시 공개는 광화문 권역 복원의 한 단계로, 도로 아래에 남아 있던 월대 전체의 복원과는 구분됨.
8월 공개한 광화문 현판에서 균열이 드러난 뒤 문화재청이 현장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문가 대책자문회의를 개최함. 문화재청은 당시 소나무의 특성과 건조한 가을 날씨에 따른 수축·팽창을 원인으로 설명하면서 추가 조사를 예고함.
복원 직후 발생한 균열은 현판의 목재 건조와 제작·공정 관리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짐. 회의 당시의 원인 설명은 문화재청의 발표이며, 이후 자체 감사와 전문가 검토를 거쳐 현판 재제작이 결정됨.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을 다시 만들기 위한 제작위원회 구성과 첫 회의 계획을 발표함.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자체 감사를 진행한 뒤, 광화문의 상징성을 고려한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재제작하기로 한 후속 조치임. 전통건축·목재 조직·건조·수리 전문가가 목재 구입과 건조, 글씨 새김 등 제작 전반을 점검하도록 함.
문화재청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2022년 9월부터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를 공개함. 월대의 남북 길이 48.7m·동서 너비 29.7m, 중앙 홍예문과 연결된 약 7m 너비의 어도 기초시설 등을 확인함.
계단이 경사로로 바뀌고 전차선로가 설치·복선화되면서 월대가 훼손된 단계도 밝혀냄. 발굴된 기초와 계단 흔적은 문헌·옛 사진과 함께 2023년 복원의 구체적 근거가 됨.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경복궁 계조당을 복원하여 일반에 공개함. 왕세자가 정무를 보던 동궁 공간을 되살린 사업으로, 복원공사는 2020년 2월 10일부터 2023년 9월 8일까지 진행됨.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광화문 앞 월대의 복원을 마치고 새 현판과 함께 공개함. ‘광화문 새길맞이’ 기념행사를 통해 궁문에서 육조거리로 이어지는 의례 공간을 다시 선보임.
현판은 고종 대 중건 때 임태영이 쓴 한자 글씨를 바탕으로 하되, 2010년의 흰 바탕·검은 글씨와 달리 검은 바탕에 도금한 금빛 글자를 적용함. 해치상도 전문가 검토를 거쳐 월대 앞쪽으로 옮겼으나, 이 위치를 조선시대 원위치의 정확한 재현으로 보아서는 안 됨.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연세대학교에서 광화문 한글 현판 병기를 주제로 첫 ‘모두의 토론회’를 개최함. 사전 모집한 국민 200명과 전문가가 기존 한자 현판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함.
한글의 국가적 상징성과 시대의 가치를 더하자는 의견, 문화유산의 원형과 건축적 형상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섬. 의견을 정책 검토에 반영하기 위한 공론화 행사로, 한글 현판 설치 확정이나 실제 교체·설치를 뜻하는 사건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