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파견한 일본군 선봉이 부산포 일대에 상륙하며 조선 침공을 개시함. 부산진·동래를 돌파한 일본군이 빠르게 북상하면서 1598년까지 이어지는 전쟁이 시작됨.
조선의 이조판서-찬성 송상현. (1551년~)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한 일본군 선봉이 부산진성을 공격함. 부산진첨사 정발과 조선군이 항전했으나 성이 함락되면서 일본군이 부산 일대의 교두보를 확보함.
부산진을 함락한 일본군이 동래성을 공격함.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군사와 주민이 항전했으나 성이 함락되면서 일본군의 경상도 내륙 진격로가 열림.
곽재우,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킴
관군의 방어체계가 급속히 무너지던 전쟁 초기에 곽재우가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조직함. 이후 낙동강과 경상우도 일대에서 일본군의 이동과 보급을 견제하며 각지 의병 봉기의 대표적 사례가 됨.
순변사 이일 등이 이끄는 조선군이 상주에서 북상하던 일본군과 맞섰으나 패배함. 상주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일본군이 충주와 한양 방면으로 빠르게 진격할 수 있게 됨.
삼도순변사 신립이 지휘한 조선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벌였으나 크게 패함. 조정이 수도 방어의 핵심 전력으로 기대했던 부대가 무너지면서 한양 방어가 사실상 어려워짐.
선조, 한양을 떠나 피난
탄금대 패전 이후 일본군의 한양 접근이 임박하자 선조와 조정이 수도를 떠나 북쪽으로 피난함. 이후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이동하면서 조선의 중앙 지휘체계가 전시체제로 전환됨.
일본군, 한양 점령
일본군이 개전 뒤 빠른 속도로 북상해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함. 선조와 조정은 이미 북쪽으로 이동한 상태였으며 일본군은 이후 평양과 함경도 방면으로 진격함.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함대가 원균의 경상우수영 전력과 합류한 뒤 옥포에서 일본 군선을 공격함. 임진왜란 초기 조선 수군이 거둔 첫 승전으로, 총통과 활을 활용한 해상 공격의 가능성을 보여줌. 한산도 대첩에 앞서 함대의 실전 경험과 연합작전의 기반을 쌓은 전투였음.
옥포 해전 승전 직후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달아나는 일본 전선을 합포까지 추격해 격파. 임진왜란 첫 출전 당일 옥포 승리에 이어 거둔 연속 승전.
옥포·합포 승전 다음 날 이순신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적진포에 있던 일본 선단을 공격해 격파. 임진왜란 초기 조선 수군의 세 번째 연속 승전.
신각·이양원 등이 이끄는 조선군이 양주 해유령 부근에서 일본군 부대를 공격해 격파함. 임진왜란 초기 육상전의 드문 승전이었으나, 신각은 앞선 전황에 대한 잘못된 보고로 승전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기 전에 처형됨.
이순신이 원균의 함대와 합류하여 사천의 일본 군선을 공격함. 적을 바다 쪽으로 유인하고 거북선을 앞세워 공격했으며, 이순신은 전투 중 어깨에 총상을 입음. 이 해전은 거북선의 첫 실전 투입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인과 화력을 결합한 전술이 이후 해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줌.
이순신 등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당포에 정박한 일본 선단을 공격해 격파함. 이후 당항포·한산도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 수군의 연속 공세 가운데 하나가 됨.
제1차 당항포 해전 발발
이순신·이억기·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고성 당항포의 일본 선단을 공격해 대규모로 격파. 사천·당포에 이어 진행된 제2차 출전의 주요 승전.
제2차 출전 마지막 단계에서 이순신이 달아나는 일본 전선을 율포까지 추격해 격파. 사천·당포·당항포로 이어진 연속 해전의 마무리.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작전 협의를 거쳐 함대를 이끌고 출항함. 노량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의 함대와 합류하며 연합전력을 구성함. 이튿날 당포에서 일본 함대가 견내량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고, 이 출전은 한산도와 안골포에서의 연속 해전으로 이어짐.
이순신·이억기·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견내량에 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을 펼치고 화포 공격을 집중함. 조선 측 보고에 따르면 일본 함선 73척 가운데 59척을 격파함. 이 승리는 일본 수군의 서진을 저지하고 호남 방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