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 영화관 명치좌 개관
명동예술극장의 전신인 명치좌가 영화관으로 문을 엶. 일제강점기 일본영화 상영관에서 출발한 건물이 해방 이후 공공 공연장과 국립극장으로 전환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적 기능을 축적하게 됨.
서울 명동에 있는 국립극단의 연극 전용 공연장임. 1930년대 영화관에서 출발해 서울시공관과 국립극장을 거쳤으며, 금융회사 건물로 쓰인 뒤 시민·예술계의 되찾기 운동과 공공 매입을 통해 2009년 재개관함. 공연예술의 역사와 도심 건축물 보존, 공공극장 운영의 변화가 함께 남아 있는 장소임.
1936년 영화관 명치좌로 출발한 건물은 해방 뒤 국제극장과 서울시공관으로 쓰임. 한국전쟁 뒤 서울로 돌아온 국립극장이 1957년부터 공간을 함께 사용했고, 1960년대에는 국립극장 전용 공간으로 정비됨. 건물의 명칭과 용도가 바뀐 역사는 식민지기 흥행시설이 전후 공공 문화시설로 전환된 과정이기도 함.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한 뒤 건물은 1975년 민간에 매각되어 금융회사 업무시설로 사용됨. 1990년대 철거·신축 계획은 예술인뿐 아니라 명동 상인과 주민의 보존 운동을 촉발함. 극장 되찾기는 옛 건축물만 남기는 사업이 아니라 상업지구가 된 명동에 공연과 관객의 활동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시도였음.
복원 사업은 전면·측면의 옛 벽체 일부를 살리고 내부를 현대적인 공연장으로 다시 구성하는 방식으로 추진됨. 외관 전체와 내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로 이해해서는 안 됨. 식민지기 건축의 계승과 해방 후 공연예술의 기억 중 무엇을 복원하는가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 정부는 장소적 역사성의 회복을 강조함.
2009년 재개관 이후 국내외 희곡을 직접 제작하는 연극 중심 극장으로 운영되었으며, 2015년 국립극단으로 이관됨. 극장이라는 시설과 국립극단이라는 제작단체는 구분되지만, 전용극장 확보는 작품을 축적하고 다시 공연하는 레퍼토리 운영을 뒷받침함. 현재 공식 안내의 객석 규모는 547석이며,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줄인 중극장 구조를 갖춤.
2020년 화재와 코로나19 시기는 공연 중단과 재개, 온라인 상연 등 공공 공연장의 운영 방식에 영향을 줌. 이후 공연에는 외국어 자막 제공 회차 등 관객의 접근을 넓히는 장치가 활용됨. 역사적 건물의 보존뿐 아니라 안전한 운영과 실제 관람 경험이 이 공간의 지속적인 과제임.
명동예술극장의 전신인 명치좌가 영화관으로 문을 엶. 일제강점기 일본영화 상영관에서 출발한 건물이 해방 이후 공공 공연장과 국립극장으로 전환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적 기능을 축적하게 됨.
해방 뒤 명치좌가 국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영화와 공연을 상연함. 식민지기 극장 건물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운영 주체와 관객층, 공간의 상징이 변화한 시기였음.
서울시가 극장 건물을 시공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함. 공연 기반이 부족하던 시기에 연극뿐 아니라 여러 집회와 행사를 수용하는 도심 공공 공간으로 기능함.
국립극장이 대구 생활을 마치고 서울 명동의 시공관으로 돌아옴. 서울시와 건물을 함께 쓰는 조건으로 공연장을 마련하고 신협 출신 배우들을 중심으로 전속 국립극단을 구성함. 이 건물은 오늘날 명동예술극장으로 이어짐.
휴전 뒤 정부가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옛 부민관은 국회가 사용하고 있었고 명동 시공관은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어 국립극장의 복귀가 늦어짐.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환도 촉구를 거쳐 공동 사용 방식으로 공연 공간을 확보함.
대구 시절 전속극단이 없던 국립극장은 해체된 신협의 배우들을 불러 국립극단으로 조직했으나, 이듬해 유치진이 신협을 재건하면서 많은 단원이 이탈함. 잔류 단원들의 공연을 이어간 뒤 신협·민극을 전속단체로 두는 재편이 이루어짐.
새 시민회관의 개관에 따라 서울시와 국립극장이 함께 쓰던 명동 시공관을 국립극장이 전용하기로 결정함. 영화관 구조를 공연에 맞게 바꾸기 위해 객석과 무대, 난방·위생시설 등을 개수하게 됨.
명동 시공관을 개수한 국립극장이 820석 규모로 재개관함. 서울시와 공간을 나눠 쓰던 단계에서 벗어나 연극과 여러 공연예술을 위한 전용 무대를 갖추게 됨.
국립극장의 장충동 이전에 따라 명동 건물이 산하 예술극장으로 운영됨. 국립극장의 중심 기능은 남산으로 이동했으나 명동 건물은 민간 매각 전까지 공연 공간으로 남았음.
장충동 국립극장 신축비용 충당을 위해 명동의 극장 건물이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됨. 이후 금융회사 업무시설로 사용되면서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이 단절됨.
건물 소유주가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 사옥을 세우는 계획을 발표함. 상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추진하던 극장 되찾기 운동은 철거 위기 속에서 건물과 명동의 공연문화 기억을 보존하는 활동으로 확대됨.
문화예술인과 지역 주민 등을 중심으로 옛 국립극장 되찾기 운동 발기모임이 열림. 상업지역으로 변한 명동에 연극 공간을 되돌리자는 요구가 이후 공공 매입과 재개관 추진의 기반이 됨.
문화관광부가 2003년 매매계약에 이어 명동의 옛 국립극장 부지 매입을 완료함. 장기간 이어진 시민·예술계의 복원 요구가 공공 소유 회복과 공연장 조성 사업으로 연결됨.
명동예술극장 복원에 관한 언론의 문제 제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업 취지를 설명함. 식민지기 건축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해방 후 공연예술의 산실이었던 장소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힘. 전면·측면 벽체 일부는 보존하고 내부와 외벽 대부분은 현대 공연장 기능에 맞춰 새로 조성한다는 방침을 제시함.
금융회사 건물로 쓰이던 옛 극장이 연극 중심 제작극장인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문을 엶. 개관공연으로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이병훈 연출로 올렸으며 장민호·신구 등 원로와 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함. 대관 중심 공간을 넘어 작품 제작과 관객 개발을 수행하는 공공극장으로 새 출발함.
명동정동극장에서 명동예술극장의 역할과 기능을 분리해 재단법인 국립극단으로 이관함. 명동예술극장이 국립극단의 제작 공연을 올리는 전용극장으로 운영되고, 극단이 공연장 운영과 작품 제작을 함께 담당하게 됨.
밤 11시 26분께 명동예술극장에서 불이 나 다음 날 오전 0시 55분께 진화됨.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로비 창고 천장 부근과 전기설비 등이 손상됨. 초기에는 전기적 요인이 추정됐으며, 정확한 원인은 합동감식 대상으로 보도됨.
국립극단이 고선웅 각색·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기 시작함. 화재로 중단되었던 극장의 공연 운영을 재개한 작품으로, 한국어 공연과 함께 중국어·영어 자막 제공 회차를 편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