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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총격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 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뉴욕주 버펄로의 앤즐리 윌콕스 저택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함. 만 42세에 취임해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사례.

이란·이라크·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가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회의를 열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창설함. 국제 석유시장을 지배하던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일방적인 원유 공시가격 인하에 공동 대응하고, 회원국의 석유정책 조정과 산유국 이익 보호를 추진하기 위한 정부 간 기구의 출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사무국이 선수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자 남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월드 시리즈를 취소함. 1904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가 열리지 않았으며, 북미 프로스포츠에서 노사분규로 전체 포스트시즌이 취소된 대표적 사례가 됨.

소련의 달 탐사선 루나 2호가 모스크바 시각 9월 14일 0시 2분경 달의 비의 늪 인근에 충돌함. 협정세계시로는 9월 13일 21시 2분에 해당하며, 인류가 만든 물체가 다른 천체 표면에 도달한 첫 사례. 탑재 장비의 관측을 통해 달에 뚜렷한 자기장과 복사대가 없다는 결과도 확보함.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가의회 선거에서 나치당이 18.3%의 득표율과 107석을 얻어 사회민주당에 이은 원내 제2당으로 부상함. 1928년 선거의 12석에서 의석이 급증한 결과로, 대공황 속 경제위기와 의회정치 불신이 나치당의 전국적 세력 확대로 이어진 계기.

튀르키예 당국이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성소수자 및 HIV 지원단체를 동시에 압수수색하고 최소 47명을 구금한 조치. 법무부 발표 기준 15개 주의 단체 9곳과 사업체 13곳, 총 162명이 수사 대상이며 일부 단체 웹사이트도 차단된 상황.

정부는 가족·아동 보호와 마약·음란물 관련 범죄 수사라고 설명한 반면, 인권단체들은 성소수자 시민사회를 겨냥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비판. 당국과 인권단체가 발표한 구금자 수에 차이가 있으며, 제시된 혐의도 법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은 단계.

일본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은 고자 겐타가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약 59%를 득표해 재선에 도전한 데니 다마키를 꺾은 결과. 다마키와 오나가 다케시가 이어 온 미군기지 이전 반대 성향의 현정이 12년 만에 교체되는 계기.

오키나와현에는 주일미군 전용시설이 집중돼 있으며, 이번 결과로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과 일본 남서부 방위력 증강을 둘러싼 중앙·현정부 관계가 변할 가능성. 다만 선거 결과만으로 기지 이전이나 민간 인프라의 군사 활용이 확정된 것은 아닌 상태.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 제21차 총회가 기구 해산 결의를 채택. 국제연맹은 국제연합 헌장 발효 뒤에도 청산 절차를 위해 존속했으며, 최종 총회에서 자산과 문서, 일부 기능을 국제연합과 관련 전문기구에 이관하는 절차를 승인.

국제연맹 사무국은 청산 작업을 거쳐 활동을 종료하고 제네바의 만국궁을 국제연합에 이관.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일부 연계 조직은 별도의 법적 지위를 바탕으로 활동을 지속.

국제연합 헌장이 중국·프랑스·소련·영국·미국 등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다른 서명국 과반의 비준을 거쳐 발효. 국제연합이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국가 간 협력, 인권 존중을 목적으로 하는 상설 국제기구로 공식 출범.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참가하지 못했던 폴란드가 이후 헌장에 서명하면서 창설 회원국은 51개국으로 구성. 10월 24일은 이후 ‘유엔의 날’로 지정.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크림반도 얄타에서 회담. 독일의 점령과 비무장화, 폴란드 국경과 정부 구성, 소련의 대일전 참전 조건, 국제연합 창설 등을 협의.

세 정상은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기구 창설회의를 열기로 합의하고, 안전보장이사회 비절차적 사안에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요구하는 표결 방식을 확정.

국제연맹의 실패와 유엔 창설

미국 워싱턴 D.C.의 덤버턴오크스에서 미국·영국·소련 대표가 전후 국제기구의 목적과 조직을 협상하고, 뒤이어 미국·영국·중국 대표가 논의를 계속. 참가국들은 총회·안전보장이사회·국제사법재판소·사무국 등을 두는 국제기구안을 마련.

회의 결과 발표된 제안은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논의한 국제연합 헌장의 기초 자료로 사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표결 방식은 합의하지 못해 얄타 회담에서 추가 협의.

미국·영국·소련·중국이 ‘일반적 안전보장에 관한 4개국 선언’을 채택.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의 주권평등에 기초하고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할 보편적 국제기구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창설할 필요성을 공식 확인.

전후 국제기구 창설을 주요 연합국의 공동 정책으로 명문화한 선언. 참가국들은 이듬해 덤버턴오크스 회의에서 기구의 목적과 조직, 권한을 구체적으로 협상.

미국·영국·소련·중국을 포함한 26개국이 워싱턴에서 ‘연합국 선언’에 서명. 서명국들은 대서양 헌장의 원칙을 지지하고 추축국에 맞서 자국의 군사·경제 자원을 동원하며 단독 강화를 체결하지 않기로 합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제안한 ‘United Nations’ 명칭이 공식 문서에 처음 사용된 사례. 선언에는 최초 26개국에 이어 전쟁 기간 여러 국가가 추가로 참여.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 원칙을 담은 공동선언 발표. 영토 확장 반대, 민족자결, 경제협력, 항행의 자유, 무력 사용 포기와 군축 등의 원칙을 제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 참전하기 전 공개된 선언으로, 1942년 연합국 선언 서명국들이 그 원칙을 재확인. 전후 국제기구 창설과 국제연합 헌장 협상에서도 주요 원칙으로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