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은 미국 의회 연설에서 공개 외교, 항해의 자유, 군비 축소, 민족과 영토 문제의 조정, 국제연맹 창설 등을 포함한 전후 평화 구상 14개 항목을 제시함. 이 구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미국의 전쟁 목표와 평화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이후 여러 민족의 독립운동 세력이 국제사회에 독립 문제를 호소하는 데 영향을 미침. 한국 독립운동계에서도 파리강화회의를 독립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알릴 기회로 인식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국제연맹의 실패와 유엔 창설
제1차 세계대전 뒤 창설된 국제연맹의 집단안보 체제가 약화되는 과정과,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연합을 설계·출범시킨 제도 전환. 1918년 우드로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부터 1946년 국제연맹 해산과 자산·기능의 유엔 이관까지를 포괄하는 주제.
국제연맹은 국가 간 분쟁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경제제재를 시행하는 최초의 보편적 국제기구였으며, 난민 보호·보건·노동·위임통치 등 여러 분야에서 국제협력의 제도와 실무를 축적. 그러나 미국의 불참, 총회와 이사회의 만장일치 원칙, 독자적인 군사력 부재, 제재 집행을 회원국의 의사에 의존하는 구조가 집단안보 기능을 제약. 일본·독일·이탈리아 등 주요국이 탈퇴하거나 규약을 위반했을 때 이들을 체제 안에 붙잡아 둘 정치적 수단도 부족한 상황.
만주사변에서는 조사단 파견과 보고서 채택에 장기간이 걸리는 동안 일본의 점령이 굳어졌고, 에티오피아 침공에서는 경제제재가 시행됐으나 석유 금수와 수에즈운하 봉쇄가 제외돼 이탈리아군의 진격을 중단시키지 못한 결과. 국제연맹의 실패는 모든 국제협력이 무의미했다는 의미라기보다, 주요 강대국의 참여와 집행 의지가 없는 보편적 규범만으로 침략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제도적 한계의 확인.
연합국은 대서양 헌장, 연합국 선언, 모스크바 선언, 덤버턴오크스 회의와 얄타 회담을 거쳐 새로운 국제기구를 설계. 국제연합은 안전보장이사회에 국제 평화와 안전의 일차적 책임을 부여하고 강제조치를 제도화하는 한편, 상임이사국 지위와 거부권을 인정해 주요 강대국을 기구 내부에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 국제연맹의 국제사무국과 기술·인도주의 협력 경험, 만국궁과 문서·자산의 일부도 유엔 체제로 계승됐지만, 거부권으로 인해 강대국의 이해가 충돌할 때 행동이 제한되는 문제 역시 새로운 체제 안에 존속.
타임라인
16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국제기구 국제연맹의 규약이 채택되어 창설이 결정. 윌슨이 가장 역점을 둔 구상으로, 강화조약 안에 국제연맹 규약이 포함됨. 국가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표방한 최초의 보편적 국제기구의 출발.
1920년 3월 19일 미국 상원이 베르사유 조약 비준안을 7표 차로 부결해 미국의 조약 가입과 국제연맹 참여가 무산됨. 앞서 1919년 11월 19일 표결에서도 윌슨 대통령이 로지 상원의원의 유보 조항을 거부하면서 비준이 좌절. 조약의 집단 안보를 규정한 제10조에 대한 반대가 핵심 쟁점이었으며, 결국 미국은 1921년 독일과 별도 강화 조약을 맺어 베르사유 체제 밖에 머무름.
일본 관동군이 선양 인근 류탸오후에서 남만주철도 선로 일부를 폭파한 뒤 중국군의 행위라고 주장하며 군사행동 개시. 관동군은 이 사건을 구실로 이튿날 선양을 점령하고 수개월에 걸쳐 만주 주요 지역으로 점령지를 확대.
중국의 제소를 받은 국제연맹은 리튼 조사단을 파견. 조사단은 만주국을 자발적인 독립운동의 결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국제연맹 총회는 1933년 2월 조사보고서를 채택.
일본 정부가 국제연맹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고. 국제연맹 총회가 리튼 조사단 보고서를 토대로 만주국을 승인하지 않는 결의를 채택하자 일본 대표단이 총회장에서 퇴장한 데 이은 조치.
국제연맹 규약에 따라 탈퇴는 통고 2년 뒤 발효. 일본은 탈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만주국 지배를 유지하고 중국 대륙에서 군사 활동을 확대.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제네바 군축회의 철수와 국제연맹 탈퇴를 발표. 독일 정부는 다른 국가와 동등한 군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결정의 명분으로 제시하고, 11월 12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추인.
탈퇴는 국제연맹 규약에 따른 통고 기간을 거쳐 발효됐으며, 독일 정부는 이후 공군 창설과 징병제 부활 등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제한을 위반하는 재무장 정책을 추진.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군이 에리트레아와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에서 에티오피아를 침공. 이탈리아군은 항공기와 기갑전력을 동원해 진격했고 1936년 5월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제연맹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국제연맹은 이탈리아를 침략국으로 판단하고 무기·금융·일부 원자재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행. 석유 금수와 수에즈운하 봉쇄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
국제연맹 총회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에 부과했던 경제제재의 종료를 결정. 제재는 무기와 일부 원자재·금융거래를 제한했으나 석유 금수와 수에즈운하 봉쇄는 포함하지 않은 조치.
결정 당시 이탈리아군은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고 에티오피아 병합을 선포한 상태였으며, 제재는 7월 15일 종료. 에티오피아 정부는 병합의 승인을 거부하고 국제연맹 회원국 지위를 유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전쟁 이후의 국제질서 원칙을 담은 공동선언 발표. 영토 확장 반대, 민족자결, 경제협력, 항행의 자유, 무력 사용 포기와 군축 등의 원칙을 제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 참전하기 전 공개된 선언으로, 1942년 연합국 선언 서명국들이 그 원칙을 재확인. 전후 국제기구 창설과 국제연합 헌장 협상에서도 주요 원칙으로 반영.
미국·영국·소련·중국을 포함한 26개국이 워싱턴에서 ‘연합국 선언’에 서명. 서명국들은 대서양 헌장의 원칙을 지지하고 추축국에 맞서 자국의 군사·경제 자원을 동원하며 단독 강화를 체결하지 않기로 합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제안한 ‘United Nations’ 명칭이 공식 문서에 처음 사용된 사례. 선언에는 최초 26개국에 이어 전쟁 기간 여러 국가가 추가로 참여.
미국·영국·소련·중국이 ‘일반적 안전보장에 관한 4개국 선언’을 채택.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의 주권평등에 기초하고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할 보편적 국제기구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창설할 필요성을 공식 확인.
전후 국제기구 창설을 주요 연합국의 공동 정책으로 명문화한 선언. 참가국들은 이듬해 덤버턴오크스 회의에서 기구의 목적과 조직, 권한을 구체적으로 협상.
미국 워싱턴 D.C.의 덤버턴오크스에서 미국·영국·소련 대표가 전후 국제기구의 목적과 조직을 협상하고, 뒤이어 미국·영국·중국 대표가 논의를 계속. 참가국들은 총회·안전보장이사회·국제사법재판소·사무국 등을 두는 국제기구안을 마련.
회의 결과 발표된 제안은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논의한 국제연합 헌장의 기초 자료로 사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표결 방식은 합의하지 못해 얄타 회담에서 추가 협의.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크림반도 얄타에서 회담. 독일의 점령과 비무장화, 폴란드 국경과 정부 구성, 소련의 대일전 참전 조건, 국제연합 창설 등을 협의.
세 정상은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기구 창설회의를 열기로 합의하고, 안전보장이사회 비절차적 사안에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요구하는 표결 방식을 확정.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기구에 관한 연합국 회의가 폐막하며 50개국 대표가 국제연합 헌장에 서명. 헌장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국가 간 우호관계 발전, 국제협력과 인권 존중을 기구의 목적으로 규정.
총회·안전보장이사회·경제사회이사회·신탁통치이사회·국제사법재판소·사무국의 6개 주요 기관을 설치하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와 표결 절차를 명시. 헌장은 각국의 비준을 거쳐 1945년 10월 24일 발효.
국제연합 헌장이 중국·프랑스·소련·영국·미국 등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다른 서명국 과반의 비준을 거쳐 발효. 국제연합이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국가 간 협력, 인권 존중을 목적으로 하는 상설 국제기구로 공식 출범.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참가하지 못했던 폴란드가 이후 헌장에 서명하면서 창설 회원국은 51개국으로 구성. 10월 24일은 이후 ‘유엔의 날’로 지정.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 제21차 총회가 기구 해산 결의를 채택. 국제연맹은 국제연합 헌장 발효 뒤에도 청산 절차를 위해 존속했으며, 최종 총회에서 자산과 문서, 일부 기능을 국제연합과 관련 전문기구에 이관하는 절차를 승인.
국제연맹 사무국은 청산 작업을 거쳐 활동을 종료하고 제네바의 만국궁을 국제연합에 이관.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일부 연계 조직은 별도의 법적 지위를 바탕으로 활동을 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