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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오전 9시 9분부터 필리버스터 돌입했으나 31시간 30분 만에 종결. 원래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는 24시간이 지난 후 재적 의원 3/5 이상(180명 이상) 찬성으로 종결할 수 있으나 이 건은 7월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자동 종료.

국민의힘은 불법 파업 조장이라며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했고, 민주당 등 야당은 노동3권 보장이라며 통과를 주도함.

새벽 6시 30분,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50세의 나이에 분신 자살. 당시 가족을 포함한 노조 측과 회사 측이 대립하면서 시신이 냉동창고에 보관된 채로 있었고, 60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름.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이 200년 12월 민영화되어 두산중공업으로 바뀐 후 2002년 노사협상이 결렬되어 47일간의 파업이 이어짐. 이 과정에서 배달호를 비롯한 9명이 구속, 18명이 해고. 두산중공업이 요청을 하여 노조 간부 63명에 대해 65억 원의 파업 피해액이 법원에 가압류됨.

배달호는 2002년 9월 17일 출소를 했으나 집행유예 (징역 1년, 2년 집행유예)를 받고, 회사에 의해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 당하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음.

버마(현재의 미얀마)의 수도 랭군(현재의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북한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폭파사건. 이 사고로 대통령 공식 수행원과 수행 보도진 17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음.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제3세계의 지지기반이 흔들렸고 우리나라는 제3세계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

제1차 남북체육회담이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의제는 ’84 LA올림픽과 ’86서울아시안게임의 남북 단일팀 구성 방안, 남북체육 교류 등이었다. 그러나 ‘버마 아웅산테러’(1983. 10. 9.)와 ‘최은희와 신상옥 납치사건’ 발표(1984. 4. 2.)에 대한 양측의 설전과 비방으로 성과 없이 끝났다.

북한에 납치된 후 다수의 영화를 제작한 두 사람은 북한의 신뢰를 얻어 영화 홍보차 방문한 오스트리아 빈에서 감시를 뚫고 미국 대사관으로 진입하여 극적으로 탈출. 탈출 당시 두 사람은 김정일이 납치를 시인하는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몰래 가지고 나와, 북한이 자행한 강제 납치 범죄를 국제사회에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됨.

참고로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을 설립하고 여러 영화를 제작했으며 최은희는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함.

전 부인인 최은희가 행방불명(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자 최은희를 찾기 위해 홍콩을 수 차례 방문하던 중 역시 납치.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 계획. 북한의 김정일이 낙후된 북한 영화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벌인 일로 알려짐. 북한에서 두 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4년간 수용소 생활.

당시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이던 최은희는 영화 제작 합작 및 투자 논의를 구실로 홍콩에 초청받음. 1978년 1월 14일, 홍콩 리펄스 베이 해변을 산책 중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강제로 보트에 탑승. 공해상에 대기 중이던 북한 화물선으로 옮겨져 남포항을 통해 북한으로 납북.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 계획. 북한의 김정일이 낙후된 북한 영화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벌인 일로 알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