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장이사회 제410차 회의에서 소련이 전달한 북한의 가입 신청을 신규회원국가입위원회에 넘길지를 논의했음. 위원회 회부안이 부결되면서 북한의 신청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음. 남한의 신청에 대한 소련의 거부권 행사와는 날짜와 심사 단계가 다른 초기 가입 시도였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1991년 9월 17일 뉴욕에서 열린 제46차 유엔 총회가 결의 46/1을 채택하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각각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사건임. 한반도를 대표하는 하나의 공동 의석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남북한이 별개의 회원국 자격으로 같은 날 국제연합에 가입했다는 점에서 외교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
추가 정보
왜 가입까지 40여 년이 걸렸을까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부터 가입을 추진했지만, 유엔 회원국이 되려면 총회 다수의 지지뿐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의 추천도 필요했음. 냉전기에 상임이사국인 소련의 거부권과 남북한의 대표성 경쟁이 맞물리면서 가입 절차가 장기간 교착되었음. 따라서 1948년 총회의 한국 관련 결의, 한국전쟁 때의 유엔 활동, 유엔 전문기구 참여는 정식 회원국 가입과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
남북한 사이에도 동시 가입의 의미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있었음. 남한은 1973년 6·23 선언에서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로 동시 가입을 수용했음. 반면 북한은 오랫동안 별도 가입이 분단을 고착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단일 의석 방안을 주장했음. 동시 가입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통일이라는 목표와 당장 가능한 국제 활동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관한 선택이었음.
냉전 완화와 북방외교의 역할
1988년 7·7 선언과 북방정책, 사회주의권과의 관계 개선, 1990년 한·소 수교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외교적 활동 공간이 확대되었음. 미국과 소련의 대립 완화 및 중국의 입장 변화도 함께 작용했음. 이러한 변화는 어느 한 정상의 결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며, 가입 이후인 1991년 12월에 일어난 소련 해체의 결과로 보아서도 안 됨.
1991년 5월 북한이 가입 방침을 발표하면서 남북한의 별도 신청이 구체화되었음. 북한은 7월 8일, 대한민국은 8월 5일 가입 문서를 제출했음. 각각의 문서에는 유엔 헌장상 의무를 수락한다는 선언이 담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회원국 심사가 진행되었음.
안보리 추천과 총회 가입의 차이
가입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음. 8월 8일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702호로 두 나라의 가입을 총회에 추천했고, 9월 17일 총회가 결의 46/1로 가입을 결정했음. 안보리 결의 702호와 총회 결의 46/1은 서로 다른 문서이므로, 안보리 추천일을 정식 가입일과 혼동하지 않도록 구분할 필요가 있음.
총회 결의는 찬성표 수를 세는 기명 표결 없이 채택되었음. 흔히 쓰이는 ‘만장일치 가입’은 반대 없이 수용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별도의 찬성표 집계가 있었다는 의미는 아님. 같은 날 다른 다섯 나라의 가입도 각각 별도 결의로 이루어졌음.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남았을까
남북한은 모두 총회와 각종 유엔 활동에 정식 회원국으로 참여할 제도적 기반을 확보했음. 국제무대에서 서로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다루는 공간이 넓어졌지만, 가입 자체가 평화협정 체결이나 군사적 대립의 해소를 뜻한 것은 아니었음.
같은 해 12월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음. 국제연합에서는 별개의 회원국으로 활동하면서도 남북 사이에서는 통일을 지향한다는 관계 설정이 병존한 것임. 따라서 동시 가입은 통일의 완성이나 영구 분단의 선언이 아니라, 대립 속에서도 국제적 공존과 대화의 제도를 넓힌 중요한 이정표로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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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장이사회 제423차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가입을 추천하려던 결의안 S/1305에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했음.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총회에 필요한 추천을 얻지 못했음. 가입 신청과 안보리의 초기 검토가 이루어진 1~2월은 실제 거부권이 행사된 날짜와 구분할 필요가 있음.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신규회원국가입위원회가 제74차 회의에서 남북한의 신청을 다루었음. 가입 자격과 제출 문서를 검토하는 단계였으며, 이틀 뒤 안보리가 정식 추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이루어진 절차였음. 위원회의 심사 자체가 유엔 회원국 지위를 부여하는 최종 결정은 아니었음.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702호를 채택하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을 총회에 추천했음. 각각 제출된 두 신청에 대해 함께 추천을 내린 것임. 이로써 수십 년간 가입을 가로막았던 안보리의 장벽을 넘었지만, 정식 회원국 지위는 이후 총회의 가입 결정으로 얻게 되었음.
노태우, 7·7선언으로 북방정책 천명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발표했음. 북한을 대결 상대가 아닌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권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공식화했음. 남북 교류와 공산권 외교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후 한소수교·한중수교로 이어지는 북방정책의 선언적 출발점이 되었음.
노태우 대통령이 제43차 유엔 총회에서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 기조연설을 했음. 7·7 선언의 방향을 설명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며 한반도 평화와 관계 개선을 강조했음. 정식 회원국이 되기 전에도 초청 연설 등을 통해 유엔 무대에서 외교 활동을 할 수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임.
가입 일주일 뒤 노태우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정식 회원국이 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연설했음.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설명한 가입 이후의 외교 활동이었음. 1988년 비회원국 시기의 첫 연설과 비교하면, 발언의 무대는 같아도 대한민국의 제도적 지위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음.
남북,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원식 국무총리와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음.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을 하나의 문서에 묶어 상대 체제 존중, 무력 불사용, 교류 확대의 원칙을 제시했음.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유엔에 각각 가입한 사실과 남북 내부의 관계 설정이 반드시 같은 뜻은 아니었음을 보여 줌. 이날은 합의서 채택일이며, 발효는 필요한 절차와 문본 교환을 마친 이듬해 2월 19일에 이루어졌음.
유엔 총회가 한국 문제를 다룬 결의 195(III)를 채택했음.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감시할 수 있었던 지역의 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평가한 문서로, 뒤이은 가입 외교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 다만 이 결의가 대한민국의 유엔 회원국 가입을 승인한 것은 아니었음.
유엔 총회가 결의 296(IV)의 한국 관련 부분을 통해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한민국 가입 신청을 다시 검토하도록 요청했음. 그러나 총회의 지지가 안보리 추천을 대신할 수는 없었음. 냉전의 대립이 회원국 확대 문제와 맞물리면서 가입 외교가 제도적 한계에 부딪힌 사례임.
제46차 유엔 총회 첫 본회의가 결의 46/1을 표결 없이 채택하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가입을 각각 승인했음. 남북 공동 의석이 아니라 두 개의 별도 회원국 자격을 부여한 결정이었음. 같은 날 미크로네시아 연방·마셜 제도·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도 각각 별도 결의로 가입했음. 이날이 남북한의 정식 가입일이며, 안보리가 가입을 추천한 8월 8일과는 구별됨.
대한민국, 유엔 가입 첫 신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이 유엔 정식 회원국 가입을 처음 신청했음. 국제사회의 승인과 다자외교 참여를 넓히려는 시도였지만,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회원 자격이 생기지는 않았음. 안전보장이사회의 심사와 추천, 총회의 결정이 뒤따라야 하는 가입 절차의 출발점이었음.
대한민국, 유엔 가입 문서 제출
대한민국이 유엔 헌장상 의무 수락 선언을 제출했음. 노태우 대통령이 서울에서 선언에 서명한 날짜는 7월 19일이었으며, 실제 제출일은 8월 5일이었음. 남북한의 문서가 모두 마련되면서 양측의 신청을 함께 심사할 수 있게 되었음.
북한, 유엔 가입 추진 방침 발표
북한이 유엔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며 기존의 동시 가입 반대 입장에서 전환했음. 대한민국 가입에 대한 국제적 지지가 커지고 냉전기 외교 구도가 변하던 가운데 이루어진 결정이었음. 이를 계기로 남북한은 하나의 의석을 공유하는 방안이 아니라 각각 가입을 신청하는 절차로 나아갔음.
북한, 유엔 가입 문서 제출
북한이 유엔 헌장상 의무를 수락한다는 선언을 제출했음. 김영남 외교부장 명의의 선언은 평양에서 7월 2일 서명되었으며, 유엔에 제출된 날짜는 7월 8일이었음. 문서 서명일과 제출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이 선언은 이후 안전보장이사회의 가입 심사 대상이 되었음.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박정희 대통령이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했음. 남북 간 내정 불간섭과 불가침, 대화의 지속,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 등을 제시했음. 또한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음. 당시 동시 가입이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대한민국이 이를 공식 정책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방향 전환이었음.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발효 절차를 마친 문본을 교환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효력을 갖게 되었음. 1991년 12월의 서명·채택과 구별되는 단계로, 이후 합의를 실행하기 위한 분과위원회와 공동위원회 논의의 토대가 되었음.
별도 문서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같은 날 발효했음. 다만 문서의 발효와 실제 조항의 이행은 같은 뜻이 아니며,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교류 확대를 실현하려면 후속 협상과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했음.
그 외 사실들 4건
트리비아
‘동시 가입’은 하나의 공동 의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두 정부가 각각 회원국 자격을 얻었다는 의미임. 가입을 승인한 총회 결의는 하나였지만, 남북한의 회원국 지위는 별개였음.
남북한은 유엔에서는 별개의 회원국이었으나,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를 표방했음. 국제기구의 회원 자격과 남북 사이의 관계 규정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병존한 것임.
총회 결의 46/1은 표결 없이 채택되었음. 따라서 ‘만장일치’라는 요약은 반대 없이 수용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며, 모든 회원국의 찬성표가 실제로 집계되었다는 의미는 아님.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702호는 가입을 총회에 추천한 결정이고, 유엔 총회 결의 46/1은 가입을 승인한 결정임. 따라서 안보리 추천일인 1991년 8월 8일과 정식 가입일인 9월 17일은 구분할 필요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