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출생
대한민국의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1979년)
대한민국의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1979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예편 (육군 대장) 후 1963년 2월 26일 창당된 민주공화당에 입당하기 위해 같은 해 8월 31일에 입당원서를 작성. 같은 날 열린 민주공화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 총재로 선출되면서 대통령 후보직을 정식으로 수락.
박정희, 1963년 10월 직접선거를 통해 당선되어 대한민국 5대 대통령 취임. 1963년 12월 17일 오후 2시, 중앙청 광장.
계엄령 선포 후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반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 6월 3일 저녁 10시 시작, 7월 29일 해지.
대통령 박정희,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 4가지 비상조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평화통일의 기반조성을 위해 공산권에의 문호개방,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한국정부의 정책선언.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 간 상호 불가침,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 간 상호 내정불간섭과 상호 불가침,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 불반대, 공산권 국가에 대한 문호 개방,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등을 포함한 7개 항의 6·23선언을 발표.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과 개헌 운동을 전면 금지하기 위해 선포한 대통령 특별 조치. 유신헌법 부인·비방 및 개정 주장을 일체 금지하며,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구속,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한 초헌법적 긴급권 발동.
후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해당 조치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무효한 조치로 판결함. (201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0도5986))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재일교포 문세광. (195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국장(9일장)으로, 10·26 사태 이후 중앙청 광장에서 영결식이 열림. 장의위원장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동작동 굴립묘지 안장. 영결식 당일 오전 10시경 전국에 사이렌이 울리고 온 국민이 1분간 묵념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전두환)는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한 수사 전모 발표. 핵심 내용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단독 범행이자 내란 목적의 살인이라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