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인도교가 한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도로 교량으로 준공. 1900년 한강철교에 이어 철도 이외의 방식으로 한강을 건널 수 있게 한 교량으로, 사람과 우마차의 통행을 위해 건설.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로도 불렸으며, 당시 중지도였던 현 노들섬을 사이에 두고 용산 쪽 소교와 노량진 쪽 대교로 나뉜 구조. 서울 도심과 노량진을 잇는 남쪽 방면의 주요 관문으로 기능.
한강대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본동·노량진을 연결하는, 한강을 가로지른 최초의 도로교. 1900년 가설된 한강철교에 이어 1917년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인도교로 준공되어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한강인도교)라 불림. 강 한가운데 중지도(현 노들섬)를 지나는 구조로, 서울 도심에서 남쪽 노량진 방면으로 통하는 핵심 관문 역할 수행.
준공 이후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일부 구간이 유실되어 1929년 재가설되었고, 1937년 노량진 쪽 구간이 타이드아치(tied arch) 형식으로 다시 놓이는 등 여러 차례 개축.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한강교 폭파로 타이드아치 경간이 파괴되었다가 1958년 복구. 1981년 원교 하류 쪽에 동일 형식의 다리를 나란히 가설해 폭을 두 배로 넓히면서 쌍둥이다리가 되었고, 이때 명칭이 한강대교로 바뀜.
한강 위 최초의 도로교로서 일제강점기·한국전쟁·전후 복구와 산업화를 거치며 수도 서울의 관문이자 한강 교통의 상징으로 기능. 건설부 국도 1호선이 한강을 건너는 교량으로, 한국 근현대 토목사와 서울 도시사의 주요 구조물로 평가.
타임라인
101925년 7월 을축년 대홍수로 중지도에서 용산 쪽으로 이어지던 한강소교와 중간 둑이 유실. 한강철교의 낡은 자재를 활용해 폭이 좁게 건설됐던 초기 한강인도교의 용산측 구간이 큰 피해를 입으며 통행 기능에 차질 발생. 이후 용산측 소교를 철폐하고 기존 둑 구간까지 연장하는 대교 재가설 공사의 계기.
을축년 대홍수 뒤 위험해진 용산측 한강소교를 철폐하고, 기존 중간 둑 자리까지 연장한 459m 대교 재가설 공사 준공. 1927년 5월 착수한 공사로, 1929년 9월 준공 뒤 9월 18일 파교식 거행. 공사비 약 120만 원 투입, 교량 폭 18m 확장으로 교통 수요 수용 능력 증대.
노량진 본동측 한강교를 1934년 3개년 계획에 따라 타이드아치(tied arch) 형식으로 개축, 1937년 준공. 공사비 251만 8,000원 투입. 이 공사에 한국인 교량 기술자 1명이 감독으로 참여한 것으로 전언. 현재 한강대교 노량진측 아치 구간의 원형 형성.
1950년 6·25전쟁 발발 사흘째인 6월 28일 새벽 2시 30분경, 북한군의 한강 이남 진격 저지를 목적으로 국군 공병이 한강의 철교 3개와 한강인도교를 폭파. 폭파 당시 다리 위를 지나던 차량과 시민, 군인이 휩쓸리며 다수의 사상자 발생. 서울 외곽 방어를 위해 남아 있던 국군 주력부대와 피란 시민 다수가 강북에 남겨지고, 한강 도하 경로 상실.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에 따라 최창식 공병감이 폭파 지시를 내린 사건.
6·25전쟁 중 파괴된 타이드아치 3경간의 복구공사 완료와 한강대교 재개통. 1957년 1월 착수한 복구공사가 1958년 5월 15일 준공되며, 전쟁으로 단절됐던 한강 도하 기능 회복. 1937년 개축된 노량진측 아치교 구간의 복원과 한강대교의 전후 재건.
쿠데타군, 한강대교 교전 뒤 서울 시내 진입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이 이끈 쿠데타군이 한강대교 남단의 헌병 바리케이드를 통과하려다 총격전 발생. 해병 제1여단·공수단·제6군단 포병대 등 병력이 교전 끝에 한강대교를 도강하고 서울 시내로 진입. 이후 중앙청과 서울방송국 등 주요 거점 접수, 오전 5시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해 군사정변 선언과 혁명공약 발표. 장면 국무총리는 반도호텔 숙소에서 피신했고, 군사정변의 서울 장악 국면 전개.
1978년 7월 23일 오후 4시 30분경 제1한강교 북단 약 160m 지점에서 시내버스가 철제 난간을 들이받고 한강으로 추락한 사고. 운전사와 안내양을 포함한 탑승자 47명 가운데 33명 사망, 13명 부상. 사고 뒤 탑승객 박경옥과 시민들이 구조 활동에 참여해 9명 구조.
급증한 교통량 수용을 위해 기존 교량 하류측에 6경간 타이드아치교, 거더교 구간 상류측에 19경간 판형교를 가설한 확장공사 완료와 개통. 교폭 40m, 왕복 8차로 규모의 쌍둥이 아치교 형태 형성. 기존 S자형 평면 노선을 대칭으로 확장하고, 제1한강교·한강인도교의 명칭을 한강대교로 변경.
한강대교 구교 부분이 서울특별시 등록문화유산 제1호로 등록. 1917년 한강인도교로 준공된 뒤 수해·전쟁·확장을 거친 교량의 역사성과, 한국전쟁 당시 남은 총탄 흔적 및 근대 교량기술 유산으로서의 보존 가치 공식 인정.
그 외 사실들
기록
한강대교는 길이 약 840m, 너비 약 36.6m 규모로, 교량 중간에 중지도(현 노들섬)가 있는 한강 위 최초의 도로교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