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시작된 3·1 운동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의 국경일. 독립선언서 발표와 만세 시위를 통해 한국인이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고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며, 광복절·제헌절·개천절·한글날과 함께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에 속함.
삼일절의 중심에는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 탑골공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만세 시위, 학생·종교인·상인·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자리함. 3·1 운동은 무장 투쟁이 아닌 대중적 비폭력 저항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국내외 독립운동 확산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
오늘날 삼일절은 단순히 과거의 독립운동을 추모하는 날을 넘어, 식민 지배에 맞선 시민적 용기와 자주독립의 의미를 되새기는 국가적 기념일로 기능함. 정부 기념식, 태극기 게양, 독립유공자 추모 행사 등이 이어지며, 한국 근현대사의 출발점 중 하나로서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가치까지 함께 환기하는 날로 자리 잡음.
그 외 사실들 3건
발언
기미독립선언서는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함.
출처: 위키문헌 3·1독립선언서 원문
기록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기독교·불교 세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가 대표를 맡음. 손병희·이승훈·한용운·백용성·이필주 등이 포함되었고, 이들은 선언 직후 대부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통계에 따르면 3·1운동은 약 두 달간 집회 1,542회, 참가 인원 약 202만 명에 이르렀고, 이 과정에서 7,509명이 사망하고 15,961명이 부상했으며 46,948명이 체포됨.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3·1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