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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22건

여러 해의 같은 날을 한곳에서.
1907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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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의 연방 의회가 2020년 대통령 선거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던 중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절차를 중단시킴. 경찰과 의회 관계자가 공격받았고 의원과 당시 부통령 마이크 펜스 등이 대피했으며, 의회는 밤늦게 재개되어 조 바이든 당선 결과를 인증함. 미국의 평화적 권력 이양과 선거 신뢰, 정치적 폭력에 관한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됨.

말레이시아 왕궁이 2019년 1월 6일 제15대 국왕인 술탄 무함마드 5세가 즉시 효력을 갖는 퇴위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함. 말레이시아의 순환식 선출 군주제에서 임기 중 스스로 왕위를 떠난 첫 사례로, 이후 통치자회의가 새 국왕을 선출하는 절차가 이어짐. 퇴위 배경과 관련한 추측은 확인된 결정 내용과 구분해 기록할 필요가 있음.

2017년 1월 6일 일본 정부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재설치에 항의하며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주재 총영사의 일시 귀국을 결정함. 동시에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과 고위급 경제협의 개최를 중단·연기하는 조치를 발표함. 일본 정부는 이를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어긋나는 사안으로 규정했으며, 소녀상 문제가 양국의 외교·경제 협력에도 영향을 미친 대표 사례가 됨.

평화의 소녀상

북한이 2016년 1월 6일 함경북도 풍계리 일대에서 제4차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함. 북한은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으나, 폭발 규모와 핵물질 관련 정보만으로 완전한 수소폭탄 실험 성공 여부를 독립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음.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는 인공적 폭발에 부합하는 지진파를 관측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후 대북 제재를 강화함. 2016년 북한 핵 능력과 한반도·동북아 안보의 주요 전환점.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디도스 공격을 박희태 의장 비서 김씨와 최구식 의원 비서 공씨의 공동 범행으로 결론짓고 7명을 기소함. 김씨가 공씨를 통해 실행자 강씨에게 건넨 1억원 중 1000만원을 범행 대가로 판단해, 공씨의 우발적 단독 범행이라던 경찰 발표를 뒤집음. 다만 그 윗선의 개입은 확인하지 못함.

《인 레인보우스》가 1월 6일 발표된 영국 공식 앨범 차트에 1위로 진입함. 몇 달 앞서 온라인으로 공개된 음악에도 일반 판매 수요가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준 결과임. 다만 차트 순위만으로 초기 다운로드의 평균 결제액이나 총매출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님.

뉴욕시 교통공사가 일부 역에서 메트로카드를 이용한 자동 운임징수 시스템을 가동함. 토큰 중심의 승차 방식에서 자기띠 카드 체제로 옮겨가는 단계적 전환의 시작이었음. 도입 첫날 전 노선이 바뀐 것은 아니며, 이후 확대된 시스템은 버스·지하철 환승 혜택과 다양한 운임 상품을 운영하는 기반이 됨.

미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낸시 케리건이 1994년 1월 6일 디트로이트에서 연습을 마친 뒤 무릎 부위를 둔기로 공격당함. 경쟁 선수 토냐 하딩의 전남편과 주변 인물들이 범행에 연루된 것으로 수사에서 밝혀지며 스포츠계의 범죄와 공정성 논쟁이 커짐. 케리건은 회복 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함.

신군부의 노동운동 정화조치와 간부 연행 이후 서울시장 명의의 청계피복노조 해산명령서가 전달됨. 같은 달 경찰이 노조 사무실의 집기를 반출하고 평화시장 일대의 접근을 막으면서 공개적인 노조 활동이 차단됨.

조합원들은 해산 철회를 요구했고 1월 30일에는 아시아·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 한국사무소 점거농성에 나섬. 농성 진압과 구속으로 활동가들이 흩어진 뒤에도 남은 노동자들이 청계모임을 꾸려 조직 재건을 이어감.

평화시장

영국 정부가 1950년 1월 6일 중국의 새 공산당 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으로 승인함.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국이 중화민국 정부를 계속 인정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결정으로, 홍콩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경제·외교적 이해관계가 영향을 미침. 정부 승인과 정식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은 다른 단계로, 영국과 중국의 대사급 관계는 1972년에 수립됨.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41년 1월 6일 의회 연두교서에서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보편적인 기본적 자유로 제시함.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전후 국제질서의 원칙을 설명했으며, 이후 유엔 헌장과 세계인권선언 등에 영향을 준 인권 담론의 주요 계기로 평가됨. 미국의 전쟁 참전은 같은 해 12월의 별도 사건임.

세르브·크로아트·슬로벤 왕국의 알렉산다르 1세가 1929년 1월 6일 기존 헌법의 효력을 중단하고 의회를 해산한 뒤 왕권에 권력을 집중함. 정당 활동 제한과 언론·시민사회 통제를 강화하며 이른바 '1월 6일 독재'가 시작됨. 다양한 민족·지역의 갈등을 강압적 중앙집권으로 해결하려 한 조치로서,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킨 전환점.

1919년 1월 6일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이 웅변회를 개최하고 구체적인 독립운동에 나서기로 결의함. 회의 참가자들은 최팔용, 송계백, 김도연 등 실행위원 10명을 선정하고 독립선언 발표 및 일본 정부와 각국 외교공관에 대한 전달 방안을 논의함. 이 움직임은 2월 8일 도쿄의 조선청년독립단이 발표한 2·8 독립선언을 준비하는 핵심 단계였으며, 이후 3·1운동의 국제적 배경과도 연결됨.

미국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1912년 1월 6일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뉴멕시코가 미국의 47번째 주로 편입됨. 19세기 중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간 뒤 오랫동안 준주로 남아 있었으며, 주민 대표성과 헌법 제정 등을 둘러싼 논의를 거쳐 주 지위를 획득함. 서부 영토의 연방 편입과 미국 남서부 정치 질서의 전환을 보여 주는 사건.

마리아 몬테소리가 1907년 1월 6일 이탈리아 로마 산로렌초 지역 비아 데이 마르시 53번지에서 첫 '어린이의 집'(Casa dei Bambini)을 열었음. 빈곤층 가정의 유아가 준비된 환경에서 스스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 재료와 교실을 구성했으며, 이 실천이 몬테소리 교육법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됨. 어린이를 수동적 교육 대상이 아닌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주체로 보는 관점이 확산하는 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