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총 16건
한 번 기록
타일러 페리, Sora 공개 뒤 8억 달러 스튜디오 확장 계획 보류
타일러 페리가 OpenAI의 영상 생성 모델 Sora 시연을 본 뒤 애틀랜타 스튜디오에 12개 사운드스테이지를 추가하려던 8억 달러 규모 확장 계획을 무기한 보류했다고 밝힘. AI가 세트와 로케이션 수요를 줄일 가능성을 투자 결정에 직접 반영한 사례이자, 배우·편집자·음향·스태프 등 제작 노동 전반의 일자리 위험을 공개적으로 경고한 사건임.
어도비·마이크로소프트 등, 디지털 콘텐츠 출처 표준 C2PA 출범
어도비·Arm·BBC·인텔·마이크로소프트·Truepic이 디지털 콘텐츠의 출처와 변경 이력을 검증하기 위한 개방형 기술 표준을 개발하기 위해 C2PA를 출범함.
온라인 허위정보와 콘텐츠 조작에 대응해 이미지·영상·음성·문서의 생성·편집 이력을 추적할 수 있는 공통 규격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음. 이후 생성형 AI 콘텐츠의 출처 인증을 위한 핵심 기반 표준으로 자리 잡음.
Adobe·Arm·BBC·Intel·Microsoft·Truepic이 Coalition for Content Provenance and Authenticity(C2PA)를 출범함.
C2PA는 CAI와 Project Origin에서 진행돼 온 출처 인증 연구를 결합해 디지털 콘텐츠의 생성·편집 이력을 표현하고 검증할 수 있는 개방형 글로벌 기술 표준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됨.
특정 플랫폼이나 미디어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카메라·편집 소프트웨어·뉴스 발행사·온라인 플랫폼 사이에서 상호운용할 수 있는 콘텐츠 출처 인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함.
《버드맨》,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 수상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버드맨》이 작품상을 받았고, 이냐리투는 감독상과 각본상을 함께 수상함. 이 작품은 촬영상까지 총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이냐리투가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결정적 성취가 됨.
《바벨》 한국 개봉
《바벨》이 한국에서 개봉함. 모로코·미국·멕시코·일본을 오가는 네 이야기를 하나의 총격 사건으로 연결해 언어와 국경, 오해의 문제를 다뤘으며, 이냐리투와 기예르모 아리아가가 함께한 ‘죽음 3부작’을 마무리함.
보더타운 개봉
『만화 혐한류 2』, ‘다케시마의 날’ 첫 기념일에 출간
시마네현이 2005년 조례로 지정한 ‘다케시마의 날’이 처음 기념된 2006년 2월 22일 『만화 혐한류 2』가 발매됨. 전작의 흥행이 이어지던 가운데 독도·재일한국인·식민지배·전후보상 등 한일 현안을 다룬 후속편이 ‘다케시마의 날’과 같은 날짜에 출간돼 한국 관련 논란이 이어짐.
주요 6개국, 루브르 합의로 환율 안정 공조
1987년 2월 22일 주요 6개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파리 루브르에서 환율 안정 공조에 합의함. 이들은 플라자 합의 뒤의 환율 조정이 대외불균형 축소에 기여했고 당시 환율이 경제 기초여건에 대체로 부합한다고 판단함. 각국은 현 수준 부근의 환율 안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함.
최초의 GPS 위성 나브스타 1호 발사
1978년 2월 22일 최초의 GPS 위성 나브스타 1호(OPS 5111)가 밴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아틀라스 F 로켓으로 발사됨. 11기로 계획된 블록 I 시제 위성 중 첫 번째로, 실제 궤도에서 위성 항법 개념을 검증한 사건. GPS가 도면상의 구상에서 실제 우주 배치 단계로 넘어간 전환점.
드류 배리모어 출생
한징, 함흥형무소에서 옥사
조선어사전 편찬 전임위원 한징이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함. 언론인 출신으로 1930년 조선어학회에 가입해 사전 편찬과 표준어 사정에 헌신한 인물. 이윤재에 이은 두 번째 옥중 순국으로,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빚은 희생.
조선민족혁명당, 김규식을 주석으로 선출
조선민족혁명당, 제7차 전당대표대회에서 김규식을 중앙집행위원회 주석으로 선출하고 김원봉을 총서기에 재선임. 임시정부에 참여한 조선민족혁명당을 김규식이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김원봉이 당의 실무와 조직을 이끄는 지도체제를 구성.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고 연합국의 승전에 대비한다는 노선을 확립함.
김성희 등, 서울에서 국채보상기성회 조직
1907년 2월 22일 서울에서 김성희·유문상·오영근 등이 국채보상기성회를 조직하고 취지서와 회칙을 마련함. 국민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서점·약국·《대한매일신보》사·잡지사 등을 의연금을 받는 수전소로 지정함. 서울에 모금·보관 체계가 마련되면서 각 지역과 계층의 국채보상 조직 결성이 확산됨.